< 이만수—기록의 영웅에서 사람을 일으키는 ‘헐크’로 >

지난 2월의 마지막 날인 28일에 소포 하나가 왔다. 열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책이었다. “야구보다 야구선수” 김길현 교수님이 쓴 책이었다. 김길현 교수님이 직접 쓴 책이라 그 자리에서 몇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 삼성라이온즈 팀에서 나와 처음으로 홀로 미국에 들어가 지도자 생활했던 1998년도가 생각이 났다. 이때만 해도 모든것들이 다 막막했던 시절이다.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던 내가 과연 험난한 미국생활에서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지도자 수업보다는 이들과 함께 경쟁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을 수 있을지 만감이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도전하고 시작했던 것이 나의 삶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될 줄은 솔직히 나 자신도 믿지 못했다. 김길현 교수님이 쓴 '야구보다 야구선수' 책을 한페이지씩 읽을 때마다 함께 했던 선수들과 레전드 선수들이 나올 때마다 한 페이지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꼭 타임머신 타고 예전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으로 되돌아 간 느낌을 받는다. 부족한 나를 김길현 교수님이 나에 대한 글을 한페이지 장식해 주어 감사할 뿐이다. 그 내용을 여기에 옮겨 본다.

한국 프로야구의 첫 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헐크’ 이만수라는 이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국가대표 포수 출신으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수많은 ‘첫 번째’를 남긴 인물이지요.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 100호 홈런, 200호 홈런, 그리고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까지. 이만수의 기록 하나하나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국 야구가 걸어온 길을 상징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6시즌 동안 1,449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6, 861타점, 252홈런, OPS 0.907이라는 빛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가 포수라는 어려운 포지션에서 이 모든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은 더욱 놀랍지요. 세 번의 홈런왕, 한 번의 타격왕, 다섯 번의 골든글러브. 이만수라는 이름은 곧 ‘최고의 포수’, 그리고 ‘헌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만수 선수 시절의 성실함은 ‘연습광’이라는 별명으로 수많은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교본이 되었습니다. 새벽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 어둑어둑한 플로리다 전지훈련장에서 홀로 스윙을 하던 그의 모습은 훈련장 관리인에게 “미친 것 같다”는 감탄 섞인 놀라움을 안겨줄 정도였죠.

이만수의 등번호 22번이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결번으로 남아 그의 헌신을 기리고 있음은, 그가 얼마나 야구에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웅장한 증표입니다.

???? 선수에서 스승으로, 그리고 ‘섬김’으로

선수 은퇴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코치로 활동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끼우는 놀라운 추억도 만들었습니다. 그때 시카고에서 카퍼레이드 했을 때의 감격은 아마 다른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겠지요.

이러한 경력을 안고 그후 SK 와이번스의 감독 등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야구와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이만수의 참된 빛은 선수나 지도자 유니폼을 벗은 후에 더욱 찬란하게 타오르는 듯합니다.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감독 및 코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오직 재능 기부와 자원봉사라는 고귀한 삶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영혼을 울리는 봉사의 뜻이, 어떤 명예로운 자리보다 소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내가 받은 걸, 세상에 돌려줄 때가 됐지요.”

???? 라오스의 붉은 흙 위에 핀 기적

야구의 불모지 라오스.

2014년, 이만수는 거기로 건너가 거기에 야구장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자신이 받은 걸 돌려준다는 꿈을 이루려 한 것이지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꿈을, 그는 스스로의 손으로 현실로 바꿨습니다.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헐크의 가슴 속에 담긴 사랑과 열정에 감동받은 후배들은 라오스의 붉은 그라운드를 함께 땀으로 적셨습니다. 마침내 10년 만에 라오스 야구팀이 국제대회에서 첫 승리라는 감격적인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 경기의 승리가 아니라, 한 국가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공중을 날아오른 순간이었습니다.

이만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재를 아낌없이 털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자선단체 ‘헐크파운데이션’을 설립하여, 봉사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로 길을 넓혀갔습니다. 그 씨앗은 어느새 녹슬지 않는 희망의 그물망이 되어 아이들의 가슴을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이만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2014년 11월 12일, 나는 야구의 불모지였던 라오스에 내려가 야구장을 만들고 그 선수들과 함께 아시안게임 본선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 순간은 라오스 구기 종목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나는 지난 11년간 라오스와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것은 그곳 청소년들에게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길이었습니다.”

???? “두 팔 벌려, 세상 속으로”

그의 선한 영향력은 해외뿐만 아니라 한국내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만수배 발달장애인 티볼 야구대회”입니다. 그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자 이 대회를 만들었습니다.

티볼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이들에게는 “세상과 이어지는 다리”입니다. 중증 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선생님과 함께 수비를 하고, 타격 후에는 손을 잡고 함께 달립니다. 어떨 때는 타격 후 선생님이 미처 손을 잡지 못한 사이, 1루가 아닌 3루로 달려가 모두에게 즐거운 민망함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그 그라운드는 단순한 경기가 아닌 위로와 격려가 가득한 축제가 됩니다.

이 대회를 통해 부모님들의 감사 인사가 전국에서 쏟아지고, 여러 기관에서도 협력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이들, 다음 대회에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이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습니다.

헐크는 대회 슬로건을 “두 팔 벌려 세상 속으로”로 정했습니다.

이만수는 말합니다.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합니다. 야구는 그 문을 여는 가장 따뜻한 손잡이예요.”

???? 함께하는 봉사와 섬김의 손길

이만수는 지금도 전국을 누비며 청소년 선수들을 찾아가 재능기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는 단지 기술이 아닌 ‘마음’을 전합니다.

그의 한마디, 그의 눈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그래, 나도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심어줍니다. 이러한 마음의 이만수는 또한 “리커버리 야구단”의 창단에 주도하여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은둔 생활을 하는 청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청년들이 야구를 통해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회복하고 자립을 도모하며 사회 일원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2019년 시작된 이 리커버리 야구단은 권혁돈 감독이 실무를 맡아서 이끌고 있습니다. 권혁돈은 리커버리 야구단의 5대 가치를 ‘희생, 배려, 협동, 인내, 예의’로 내세웁니다. 그래서 고립·은둔 청년들이 야구를 통해 5가지의 가치를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공동체성을 키워 나가며 회복과 자립을 도모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만수의 곁에는 그 마음에 감동한 동료와 후배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권혁돈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그의 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곳에서 야구와 봉사의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최홍준은 라오스를 비롯해서 동남아 각국을 돌아다니며 야구를 통해 청년들을 돕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한 뜻은 많은 영혼들을 끌어들이나 봅니다.

???? 가장 행복한 삶

이만수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55년이라는 세월을 야구 한 길만 달려오면서 저는 많은 성취를 누리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오히려 라오스에서 땀을 흘리며 보낸 지난 11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도 열흘을 채 가지 않았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현지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하며 보낸 날들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돈과 명예가 따르던 현역 시절보다, 지금처럼 재능을 나누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합니다.”

그는 자신 인생의 마지막 장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함께 호흡하겠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만수는 이제 야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야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그러나 이렇게 한마디 더 붙이면 어떨까요?

“그는 야구를 ‘통해’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야구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는 역사가 아닌, 함께 먹고, 함께 뛰며, 다시 설 용기를 나누어 주는 현재 진행형의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