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 코피 >
나는 남들보다 야구를 늦게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니 그때 나이가 14살이었다. 세월이 흘러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생각해보면 14살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정말 무모할 정도로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않고 야구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의 이야기는 “당신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옛날 했던 대로 똑 같이 할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과연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정말 14살에 운동했던 것처럼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예스”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선배들과 동료들로부터 불린 별명이 “쌍코피”였다. 왜냐하면 어린나이에 하루 4시간 밖에 못자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든것들이 연약했지만 버텨냈다. 버스를 타거나 휴식시간에 앉아 있으면 잠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걸어가거나 운동할 때 코피는 밥 먹듯이 쏟았다.
중학교 시절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 종점까지 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결심은 나를 좀처럼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붙잡았다. 무서운 아버님이 나를 옆에서 날마다 지켜보고 계셨고 어머님은 어김없이 나와 함께 새벽이면 함께 일어나시곤 했다.
이렇게 젊은 시절에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않고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나는 나의 패턴대로 야구했다. 아내와 대학시절 연애를 하더라도 나는 새벽 5시에 데이트를 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서울 올림픽 아파트(둔촌동)에서 장안동까지 새벽 4시에 로드워크 하면 딱 한시간 걸린다.
아내와 대학시절 남들이 하지 못하는 데이트를 새벽 5시부터 시작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갖고 있다.
프로에 와서도 이 루틴을 이어갔지만,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프로 3년차부터 하루 평균 6시간을 잤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상생활을 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하루 6시간 넘게 자지 않는다.
요즈음 나는 라오스와 베트남 야구로 인해 평소보다 많은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스트레스는 뼈를 녹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말 나이가 들고부터 그것을 많이 경험한다. 잠을 제대로 못자고, 생각이 많아져 남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로 인해 입맛이 뚝 떨어졌다.
지난 9월 29일 아내와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코피가 쏟아지는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코피를 쏟기는 이번이 처음인것 같다. 얼마나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면 밥을 먹다가 코피를 쏟는지... 아무리 쏟아지는 코피를 막아도 멈추지 않았고, 아내도 나의 이런 모습을 결혼하고 처음 보아서 그런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아내는 당장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들을 멈추라며 건강까지 해쳐가며 굳이 동남아에 야구를 전파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물론 아내의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을 알지만 여기서 접는다는 것은 나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가 계획하고 내가 생각한 목표를 위해 나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는 도중에 손을 놓지 못할 정도로 많이 달려왔다. 나의 체력도 거의 다했는지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코피가 난다. 아무리 멈추려고 갖은 노력을 해도 한번 쏟아진 코피는 멈추지 않는구나.
그러고 보니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이 난다. 잠자다가 무언가 느낌이 이상해 불을 켜면 이미 많은 코피를 쏟은 상태라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다행히 지금은 옛날 14살 때처럼 많은 코피나 쌍코피는 흘리지 않는다.
지금도 남들은 이야기 한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그리고 건강해야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야구를 오래할 수 있다고.... 물론 모두가 옳은 이야기지만 혹 중간에 나의 삶이 다 한다고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고,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로 인해 모두가 행복해 하고 나로 인해 꿈을 갖고 비젼을 갖는다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들을 위해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