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달려가야 할 길 >
동남아 라오스로 내려가 지난 10년 동안 야구를 전파하기까지 무수한 어려움과 힘든 일들을 거쳐야 했다. 처음 라오스에 들어가 야구를 전파할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른체 오로지 야구를 보급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앞만 보며 달려갔다.
그렇게 시작했던 동남아 야구가 어느덧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동남아에 야구를 전파한다는 것은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며 모두가 말렸던 기억이 있다. 동남아에 야구 전파는 무모할 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작했던 동남아 야구가 이제 라오스 뿐만 아니라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까지 야구의 붐이 서서히 일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에서 서서히 야구가 쇠퇴해지는 마당에 오히려 동남아에는 야구가 조금씩 성장하는 추세다.
아무도 믿지 않았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동남아에서도 얼마든지 야구의 붐이 일을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우리가 조금만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에게 신경을 쓴다면 멀지 않아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대만처럼 야구의 붐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는다.
2014년 11월 12일 처음으로 라오스로 들어가 야구를 이들에게 전파했다. 이때의 막막함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라오스에서 야구가 가능한 일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소리 치며 라오스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솔직히 동남아는 생소한 나라다. 60평생 동남아 여행은 괌 뿐이었다. 처음으로 라오스에 들어갈 때 라오스가 어떤 나라인지 인터넷으로 많이 검색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큰소리 쳤지만 내심 나의 깊은 내면에는 도저히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는 커녕 단 하루도 제대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이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시작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이럴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랐기 때문에 지난 10년을 이들과 함께 야구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정말 이때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달려갔다. 지난 세월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픔과 눈물을 흘리며 묵묵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가장 힘든것은 없는 일들을 있는것처럼 그럴듯하게 거짓과 누명 그리고 오해는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야구의 불모지인 동남아 특히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해 몸부림 치며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작했던 동남아 야구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이들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제 다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달려가려고 한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길이 나의 길이기에 나는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해 나가려고 한다. 때론 포기하고 싶고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 정신으로 끝까지 나의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달려가려고 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나 또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10년 넘도록 많은 과정들을 직접 경험하고 지켜 보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한것처럼 욕심을 부려서는 절대 안 된다. 정말 이제부터는 “스텝 바이 스텝”식으로 한발씩 나아가야 한다. 한꺼번에 열보를 뛰어서는 안 된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많이 늦더라도 이제는 실수 없이 하나씩 헤쳐나가야 한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고 어렵더라도 손사랑 감독과 함께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며 우리가 아닌 이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야 한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 20장 22절에서 2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