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윤 기자
- 승인 2024.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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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의 정의'란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스승과 제자의 정의가 부자 같이 무간하여야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막힘이 없고, 동지 사이의 정의가 형제 같이 친밀하여야 충고와 권장을 주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한 뒤에야 윤기가 바로 통하고 심법이 서로 건네어서 공부와 사업하는 데에 일단의 힘을 이루게 되나니라”
나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스승님이 두분이 계신다. 첫번째 스승님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다. 70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지금도 나의 삶에서 잊을 수 없었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초등학교 졸업할 때 6학년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다.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지만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은 지금도 잊지 않고 나의 마음 한편에 새겨두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말썽꾸러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나로 인해 1년 내내 많이 애를 태우시고 힘드셨다는 생각이 든다. 개구쟁이고 말썽꾸러기 였던 나를 선생님은 졸업식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림과 함께 멋진 글을 선물하셨다. 그림과 함께 평생 나의 삶에서 영원히 잊지 않고 지금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의 말씀은 '공든 탑이 무너지랴'이다.
선생님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멋진 액자에 넣어서 선물하셨다.
선수시절이나 미국생활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로 내려가 야구를 보급할 때도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가슴에 깊게 새겨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오더라도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의지하며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인생을 살다보면 때때로 어려움과 난관들이 나타날 때가 있다. 이제 그 어떤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을 만나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으로 인해 포기하지 않고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은 이미 이 땅에 안 계신다.
그러나 선생님이 남기신 많은 사랑은 지금도 나의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대구에 내려가 선생님과 식사하면서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직접 많이 들었다. 비록 선생님이 연세는 많이 드셔도 예전에 갖고 있던 인품이나 제자를 사랑하시는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셨다.
선생님과 옛날 초등학교 시절에 지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만수 너는 어린시절부터 힘이 좋아 씨름 선수가 될 줄 알았다"며 6학년 시절 체육시간에 원을 그려 친구들을 원에서 밀어내기 게임을 했는데 "만수 너가 친구들을 무려 혼자서 10명을 밖으로 밀어내고 11명째 밀어낼 때 넘어졌다“고 옛날을 회상하셨다.
초등학교시절에 말도 못할 개구장이었고 선생님 말씀을 지지리도 듣지 않았던 말썽꾸러기였기에 선생님이 더 많이 생각이 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초등학교 졸업할 때 박동희 선생님이 직접 나에게 그림과 글을 적어서 선물하셨는데 그 내용이 “공든 탑이 무너지랴“였다.
덜 완성된 탑을 손수 그려서 선생님이 나에게 선물 하셨다. 선생님께서 직접 선물을 주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만수야~ 다 완성되지 못한 탑을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너가 직접 완성 시키도록 해라” 나의 삶에서 숫한 어려움과 역경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마음에 담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탑을 완성 시키겠다는 자세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덜 완성된 탑이었지만 노력하여 쌓은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믿음을 지금도 지키며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평범하고 흔한 말 같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얼마나 소중한 진리인지 모르겠다.
두번째 나의 스승님은 정동진 감독님이다.
지난번에도 정동진 감독님에 대해 글을 썼기에 이번에는 짧게 정동진 감독님을 회상하며 글을 쓴다.
나는 남들보다 야구를 늦게 시작한 나머지 나의 포지션이 없었다. 친구들은 초등학교부터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자기의 포지션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보다 한창 늦게 야구하는 바람에 고정된 포지션이 없이 외야수 했다가 내야수 했다가 떠돌이 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 포수 잘해서 포수가 된 것이 아니라 덩치가 남들보다 좋아 포수가 되었다. 거기다가 졸업할 때까지 어깨 힘이 좋아 포수보다는 주로 투수로 많이 활동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중학교 3학년 졸업반 일 때 '문교부장관기 전국중학교 야구대회'에서 처음부터 마운드에 올라가 결승전까지 던져 우승했다.
정식적으로 포수로만 활동하게 된것이 대구상고 올라가고부터 시작 되었다. 나의 야구인생 운명을 바꾸게 된것이 바로 대구상고 1학년 말 정동진 감독님이 모교인 대구상고에부임하시고부터 나는 새롭게 야구에 눈을 뜨게 되었다.
국내최고의 명포수로 활약했던 정 감독님은 그 당시 초보 포수였던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야구일지를 쓰냐? 그때 정동진 감독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에게 감독님께서 “지금부터 일기와 야구일지를 매일 쓰라”며 당부하셨다.
존경하던 감독님의 당부에 그날 이후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와 야구일지를 쓰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시절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 현역시절 야간경기가 아무리 늦게 끝나도 노트에 그날의 경기내용과 느낀 점을 빼곡히 적어둔 노트들은 야구하는 동안 나에게 보물이 되었다.
이런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해 주신 정동진감독님께 지금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일기뿐만 아니라 운동선수여도 늘 책을 가까이 하라고 부탁하셨고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직접 본을 보이셨다.
“일기 쓰고 야구일지 써라“ 는 평범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성실과 노력과 성장의 가치를 가르쳐준 그 한마디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님의 말씀이다.
나도 이제는 만나는 후배들에게 똑 같은 말을 하게 된다. “꼭 일기 쓰고 일지 써라.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책은 손에서 놓지 않도록 해라”
두분의 스승님을 만나 나 스스로 깨닫고 경험한 것은 어떤 어려움과 난관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역경이 오더라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이다.
삼성 라이온즈 팀에서 선수생활을 끝내고 처음으로 지도자를 시작했던 것이 1998년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싱글A 킨스톤 팀이었다. 두번째로 지도자했던 팀이 시카고 화이트 삭스 트리플A 샤롯 나이츠 팀이었다. 그리고 2000년도에 미국 메이저리그인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이다. 2006년 끝으로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2007년부터 SK 와이번스 팀에서 수석코치와 2군 감독 그리고 2012년부터 SK 와이번스 팀에서 2014년 동안 감독생활을 했다.
지도자생활은 모두 프로에서 했다. 지도자하면서 늘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마추어 초, 중, 고, 대학생들에게 한번쯤 가르쳐 보고싶은 욕망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정말 우연찮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KBS TV 에서 첫번째로 방영한 '우리들의 공교시' 서장훈 선수의 농구 프로였다. 두번째로 방송이 된 것이 야구였는데 거기에 내가 케스팅 되어 '배명고등학교' 야구클럽 감독을 맡게 되었다.
야자타임이란 : ‘야구하는 사람들(野者)의 시간’이라는 뜻으로 ‘야자타임’이다.
KBS TV 에서 몇번이나 찾아와 배명고등학교 클럽야구 감독을 맡아 달라고 할 때 솔직히 몇번이나 고사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프로야구 선수들만 가르치다가 아마추어 학생들 (비야구인 대상으로)을 가르치는 일이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배명고등학교 야구동아리 학생들과 같이 야구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 당시 '우리들의 공교시' 책임을 맡았던 KBS TV 권재민PD가 몇번이나 찾아와 '꼭 감독님이 배명고등학교 야구클럽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작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가능할까?'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졌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비록 일반 학생들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많이 힘들고 어렵지만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이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하늘로 쳐 야구동아리 선수들과 같이 야구하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은 깜짝 생일 파티와 대회우승을 끝으로 헤어질 때의 아쉬움으로 인해 나도 울고 학생들도 울고 선생님과 KBS TV 우리들의 공교시 촬영팀과 스텝진들과 함께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9개월 동안 두 분의 천항욱 선생님과 김영훈 선생님, 그리고 하늘로 쳐 야구동아리 선수들과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도 나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와 함께 했던 선수들이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철부지 같았던 선수들이 이렇게 장성해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배명고등학교 야구동아리 학생들과 같이 야구했던 시절에 형들 속에 끼어 어리둥절했던 1학년생들도 8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을 할 것 같다.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선수들이 앞으로의 삶이 험난하고 견딜 수 없는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굳건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야구를 통해 배운 희생과 , 협동정신 그리고 친구를 배려하고 ,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내하고 , 서로 도와주며 , 서로 의지할 때 우리들 앞에 닥친 난관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마라. 나의 인생철학인 “ Never ever give up “ 기억하고, 험난하고, 어려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나의 말을 기억하며 너희들에게 삶의 지침서로 새기며 살아가길 항상 뒤에서 응원한다.
이들 선수들과 선생님하고 함께 했던 긴 9개월의 지도자생활은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때 함께 했던 선수들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 식사도 함께 하면서 삶의 이야기와 장래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선수들과 함께 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평생 제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제자가 아닌 스승의 자리에 서서 젊은 선수들에게 장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전해주고 그들에게 인생의 참 가치를 가르쳐 주면서 함께 할 수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 스승과 제자의 자리를 모두 경험했지만 스승의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인생을 살면서 다시 깨닫게 된다.
[글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