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영웅 루 게릭 선수 >
14일 WBC 대회 8강전에서 대한민국 팀이 도미니칸공화국 팀에게 졌다. 젊은 선수들이 8강 올라올 때까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야구인 선배로서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이날 오후 시간에 김경윤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그 내용을 여기에 옮겨 본다.
“2026 WBC 도미니카공화국과 준준결승이 열린 14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
연합뉴스에 배정된 트리뷴 자리에 짐을 풀고 양 옆에 어느 나라, 어느 매체가 배정받았는지 먼저 확인했다. 오른쪽은 스포츠동아. 왼쪽은. WBC Sarah. 사라.. 사라? 내가 아는 사라??
사라 랭스. 야구기자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나도 모르게 만나서 영광이라고, 사진 한 장 함께 찍을 수 있냐고 요청했다. 옆에 계시던 남자분(나중에 알고보니 남자친구라고..)의 도움을 받아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사라 랭스는 2010년대 SNS를 통해 방대한 MLB 통계자료와 기록을 전하며 유명인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ESPN 등 미국 주력 언론에 진출해 통계 전문가, 기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자료까지 찾을 수 있지?' 라고 생각이 들만한.. 가령 1930년 이후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으로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한 경기 7탈삼진 이상을 잡은 선수 같은.. AI조차 찾기 어려운 자료를 바로바로 소개하며 전세계 야구 기자들과 팬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랭스가 루게릭병 진단을 공개한 건 2022년의 일이다. 그는 2019년 몸의 마비 증세를 느꼈고, 결국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포스팅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랭스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인 MLB닷컴 기자로 적을 옮겨 다양한 통계자료와 글을 전달했다.
그는 이번 WBC 대회에서도 전세계 취재기자들에게 다양한 기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날 경기에서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랭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안구 인식 프로그램으로 휴대폰을 조작하고, 이를 옆에 있는 남자친구분이 타이핑해 글로 변환한다. 의사소통은 어려워보였고 마른 기침도 계속했다.
한국이 WBC 준준결승에서 탈락하면서, 남은 대회 기간 랭스를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음 대회 때, 다시 밝은 얼굴로 그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에서도 잠시 김경윤 기자가 소개했듯이 '사라 랭스'는 2010년대 SNS를 통해 방대한 MLB 통계자료와 기록을 전하며 유명인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ESPN 등 미국 주력 언론에 진출해 통계 전문가, 기자로도 활동했다.
'사라 랭스' 기자는 이번 WBC 대회에서도 전세계 취재기자들에게 다양한 기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해박한 지식은 세계에서 날라온 야구기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2019년 몸의 마비 증세를 느꼈고, 결국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는 김 기자의 글을 읽고 한참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지인들 중에 두명이나 루게릭 병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한번 글을 쓴적이 있다.
나는 남들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최고의 선수가 되는지 잘 모른 체 야구를 한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누님은 야구의 눈을 뜨게 해준 분이다.
누님은 야구하는 동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서점이란 서점은 다 둘러본 뒤 귀한 야구책을 여러 권 구입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야구책은 대부분 번역이 되지 않은 영어 원서였다.
대학생이었던 누님은 야구하는 동생을 위해 몇날 며칠, 아니 몇달을 걸쳐 그 책을 번역해 주었다. 누님 덕분에 선진야구인 미국야구를 알게 되었고, 특히 가장 인상적인 미국 선수가 '루 게릭'이었다.
'루 게릭' 선수의 화려한 성적에 놀랐을 뿐 아니라, 너무 젊은 나이인 38살에 루 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더욱 놀랐다. 그 때부터 '루 게릭' 선수를 마음의 영웅으로 삼고 선수생활을 했다.
'루 게릭' 선수를 잊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지인 두분이 루 게릭 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1939년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유명 타자였던 '루 게릭'은 근위축측삭경화증이라고 불리는 병 때문에 은퇴하였고 죽음에 이르면서, 그 병에 루 게릭 병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사실 이 병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30년이며, 1869년 프랑스 의사 장 마르틴 샤코(Jean-Martin Chartcot)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으며, 1874년 명명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시카고 화이트 삭스 코치로 활동할 때 처음으로 뉴욕 양키스 팀과 원정경기 갔을 때의 흥분과 설레임, 그리고 감격을 나의 삶에서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경기 전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의 영웅들이 활동했던 뉴욕 양키스 구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양키스 구장을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매여 오는 느낌은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급하게 뛰고 흥분이 되어 제대로 걸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번 글에서도 썼지만 양키스 구장 센터필드 뒤편에는 양키스 팀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선수들의 동상들이 서 있다.
아무도 보지 않기에 동상 가까이 가서 동상을 얼싸 안았던 기억이 있다. 거기에는 전설적인 '베이브 루스' 선수, '조 디마지오' 선수, '루 게릭' 선수, '요기 베라' 선수 등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동상이 걸려 있다.
그런데 미국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서 코치 생활할 때 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지금까지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 형님이 계신다. 그 형수님의 남동생이 '루 게릭' 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다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 형수님의 남동생은 미국에서 나와 함께 야구장을 찾아 응원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결국 '루 게릭' 병을 앓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SK 와이번스 팀을 끝으로 인도차이나반도인 라오스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로 내려가 야구를 보급할 때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아우님의 와이프가 '루 게릭' 병으로 오랜 시간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우님 집으로 찾아갔다. 제수씨한테 큰 위로가 되지 않지만 제수씨의 손을 잡고 기도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아우님은 사랑하는 와이프를 위해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다 해 준다고 한다. 힘들어 하는 와이프를 위해 가끔 와이프를 차에 태워 들로 바닷가로 구경가고 싶다고 했다. '루 게릭' 선수는 화려한 선수생활을 할 때 베이스를 돌다가 넘어져 병원에 갔는데 '루 게릭'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우님이 제수씨와의 연애시절, 그리고 직장생활 할 때 묵묵하게 평생 자기 뒷바라지를 해준 와이프 스토리를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지금도 아내를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요즈음 정말 보기 드문 훌륭한 남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 게릭' 선수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로 인해 부족하고 연약한 내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나약하고 연약한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그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루 게릭' 그는 나에게 큰 비젼과 꿈을 준 위대한 선수다.
오늘 김경윤 기자가 쓴 글을 보며 잠시 '사라 랭스' 기자를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