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동문이 본 인간 이만수 - 관중과 함께 하는 야구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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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동문이 본 인간 이만수 - 관중과 함께 하는 야구 꿈꾼다.......

최고관리자 0 2,968 2020.09.12 16:23
한양대 동문이 본 인간 이만수 - 관중과 함께 하는 야구 꿈꾼다
 
이만수

2008. 9. 4. 12:04

한양대 동문이 본 인간 이만수 - 관중과 함께 하는 야구 꿈꾼다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이만수(체육 82년 졸) 동문
“꿈과 비전 지닌 ‘좋은 지도자’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감독 되기 위해 노력할 것

지난해 5월 26일, 한 중년의 남자가 속옷 차림으로 야구장을 뛰어 다녔다.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쟁터’ 같은 곳에서 그 남자는 참 밝게도 웃고 있었다. 그날따라 경기장을 꽉 메운 관중들 역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프로 선수 경력 16년 동안 헐크라 불리던 사나이가 인천 문학 경기장을 채운 3만의 관중과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야구장이 만원이 된다면 속옷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뛰겠다고 약속했던 이만수(체육 82년 졸) 동문.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퍼포먼스를 실천한 것이다. 무엇보다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10년 안에 한국 프로야구를 ‘재밌는 야구’로 만들겠다는 이 동문. 그와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역경 딛고 야구 본거지서 지도자로 성장하다.

이 동문은 현재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활약 중이다. 골든글러브 5회 수상, 최고 타격상 3회 수상, 홈런왕 3회 수상 등 최고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면 그의 지도자행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해 걸어온 길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지난 97년 소속팀이던 삼성 라이온스로부터 일방적으로 선수 생활 마감을 통고받은 그는 어쩔 수 없이 외국행을 택했다. 최고의 타자로 불리던 자신이 불명예 은퇴를 했다는 사실이 그를 더 이상 국내에 머물 수 없게 한 것.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꿈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코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자비를 들여가며 선택한 미국행. 힘겨운 도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전혀 영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미국행을 택했죠.
한국에서 ‘이만수’는 어느 곳에 가나 환영 받았는데, 미국에서의 ‘이만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죠.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영어도 할 줄 모르니, 메이저리그 행은 사실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겪은 실패를 발판으로 열심히 뛰었어요.” 마이너리그의 한 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던 그의 꿈은 5년 후에 메이저리그 코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동문은 매일 새벽 가장 먼저 연습장에 나가 선수들을 챙겼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던 그가 내세울 수 있었던 점은 실력과 성실함뿐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명성을 잊고 오로지 열심히 코치 생활에 임했던 그는 결국 미국 진출 3년 만인
지난 2000년에 메이저리그 프로야구단인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 입단하게 됐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코치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9년간의 미국 생활 동안 저는 진정한 제 자신을 찾았습니다. 화려함에 가려 잊고 지냈던 저의 차분함과 성실함을 그곳에서 다시 알게 된 거죠. 게다가 소속팀인 화이트 삭스가 지난 2005년, 88년 만에 메이저리그 우승을 했습니다. 선수 시절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당시 느꼈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관중도, 선수도 즐길 수 있는 야구 꿈꾼다.

7년간의 메이저리그 코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 동문은 SK 와이번스 수석코치로 자리를 잡았다.
굳이 SK를 선택한 이유는, ‘재밌는 야구’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스포츠는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 정신이기 때문이라고. 승부에만 집착하는 경기를 하면 점점 관중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동문은 더 이상 ‘전쟁’같은 스포츠는 그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팀으로는 최초로 스포츠에 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한 SK 와이번스 야구단이 작년에 우승을 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죠. 올해도 1위로 독주하고 있어요. 팬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야구를 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의 스포츠 선수들이 즐기면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관중도, 선수도 스포츠를 즐겨야 합니다.”

소속팀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이 동문 역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그가 홈구장인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속옷 퍼포먼스’를 한 것. 당시 SK 구장은 팀의 높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문은 선수들에게 열심히 뛰면 관중도 많이 올 것이고, 그렇게 경기장을 채운 관중이 만원이 된다면 자신이 속옷을 입고 그라운드를 뛰겠다고 선언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한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제 얘기를 했죠. 그래서 결국 팬들과의 약속이 된 겁니다. 지난 9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신뢰’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죠. 그래서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속옷 차림으로 뛸 당시에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저와 같은 복장으로 뛰어준 몇몇 팬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야구와 사랑’ 얻은 ‘한양’의 추억
이 동문은 야구장을 ‘안방’이라 생각했다. 속옷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그의 생각 때문이라고. 그만큼 평생을 야구와 함께해 익숙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또 그는 야구를 ‘삶’이라 했다. 야구를 통해 행복을 느꼈고 인생을 알 게 됐으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이 동문. 그렇기 때문에 야구장에서 속옷만 입고 뛰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그는 웃어보였다. 게다가 그는 야구를 하기 위해 선택했던 본교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했다. “‘한양’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야구 하나였습니다. 부모님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원하셨죠. 하지만 당시 본교 야구부가 최고 명문이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요. 1학년 때 평생의 제 짝을 이곳에서 만났거든요. ‘캠퍼스 커플’이었던 셈이죠. 한양을 떠올릴 때, 가장 행복한 기억은 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당시 야구부의 뛰어난 성적도 이 동문의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를 맡은 그는 여러 번의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입학하자마자 4번 타자로 출전했던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야구와 사랑을 모두 얻을 수 있게 한 ‘한양’이 인생에 큰 의미를 가진다는 이 동문. 그가 아직도 한양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이유다.

꿈과 비전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가야
대학시절을 떠올리던 이 동문은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꿈과 비전을 가지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지난 시간 동안 그는 두 번의 목표가 있었고,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이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최고의 타자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과 메이저리그 코치가 되겠다는 목표를 모두 이룬 것이다. 한양의 후배들 역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고 그는 강조했다. 눈앞의 성과만으로 절망하지 않는 것, 인내를 가지고 전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난 시간 동안 그가 깨우친 삶의 철학이자 지금의 이 동문을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제 세 번째 목표는, 감독이 된 후에 정말 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야구를 하는 것입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는 것은 일시적인 기쁨을 줄 뿐이죠. 저는 오래도록 ‘좋은 지도자’로 기억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한양의 후배들 역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저와 함께 끊임없이 노력했으면 합니다.”

학력 및 약력
이 동문은 지난 78년 본교 체육학과에 입학해 82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한 그는 지난 97년까지 16년 동안 프로야구 사상 첫 타격 3관왕(타율, 타점, 홈런), 골든글러브 수상 5회, 최고 타격상 연속 3회, 홈런왕 3회 등 당대 최고의 타자로 불리며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다. 이후 지난 97년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년 동안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트리플A 팀인 샤롯트 나이츠의 객원코치를 지내다, 2000년에 드디어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 불펜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코치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7년 동안의 코치 생활을 마친 그는 귀국 후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활약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프로야구를 사랑해주시는 팬여러분이 계셔서 세상은 참 행복합니다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만수가 되겠습니다

이만수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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