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굴 위해 종을 울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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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9 09:06
< 누굴 위해 종을 울리나 >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로 내려가 야구를 전파한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볼 때 정말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동남아시아의 최빈국에서 시작된 라오스 야구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라오스 야구를 알리고 수없이 도움을 요청했다. 모든 사람이 내가 생각한 대로 선한 후원에 동참해줄 것으로 믿고 있었을 때였다.
이렇게 시작한 기부에 대한 부탁들은 후원이 아닌 외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프로야구를 통해 많은 인기를 받았고 어디든 환대받았던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야구는 커녕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라오스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 선수들...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너무나 편하게 누리고 있는 기본적인 생활을 충족하고 야구를 하며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야구를 통해 그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많은 외면도 쉬이 감당할 수 있었다.
‘앵벌이’를 하기 위해 다닌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밥, 돈, 물건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비는 행위나 불량배의 부림을 받고 어린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를 하는 것 또는 어린이“를 앵벌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고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던 내가 타인의 거절과 외면 그리고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거절과 외면, 그리고 라오스 야구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는 그라운드의 헐크가 아닌 멘탈 강한 헐크 이만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깨닫게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 강한 빛으로 인해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가 들고 힘들게 야구 전파를 하면서 이제야 뚜렷하게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정말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 오랜시간들을 묵묵하게 인내하며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는지 너무 신기할 뿐이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가장 듣기 싫고 입에도 담기 싫은 말이 '앵버리'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동남아에 내려가 야구를 전파해야 했는지? 나의 영광과 나의 인기 그리고 나의 명성을 위한 일이었다면 나는 단 하루도 동남아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라오스에 내려가 헐벗고 굶주린 어린학생들을 보며 결심했던 것이 야구를 통해 이들에게 꿈과 비전 그리고 삶의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이런 어린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루게 되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달려가고 있다.
친구들과 지인들 그리고 사회 각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거기에 야구인 선,후배들 또 나와 같이 한 팀에서 야구했던 제자들까지 동남아에서 굶주리고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을 위해 그들에게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을 주기 위해 '앵버리'를 자처하게 되었다.
평생 야구라는 한 울타리에서 선수생활과 지도자생활을 하면서 받는 것이 평생 익숙해 졌던 삶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인생을 홀로 살아가고 개척하는 삶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웠는지 모른다. 평생 야구만 하던 내가 홀로 서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인생에서 모든 것들이 다 불가능 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도 실수와 실패를 많이 경험하면서 뒤늦은 나이에 하나씩 배우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 행정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도 처음에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도 시간이 흘러 멋지게 잘해 내는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 기특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늘 강조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던 것이 '불가능이란 도전하지 않고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가능'이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말이다. 비록 실패하고 넘어지고 실수하더라도 도전하고 다시 하나부터 시작하게 되면 언젠가는 불가능했던 일도 가능케 되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10년이 넘어 11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 몇번 나를 좋게보고 좋게 생각했던 지인들과 친구들 그리고 각처에 있는 사람들까지 서서히 나를 외면하고 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같이 야구했던 수많은 선,후배들과 선수들까지 나를 피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때론 친구들과 지인 그리고 야구인 선,후배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나를 피하는 것을 볼 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쓰라림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호소할 때가 있다.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앵버리'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길이 나의 길이라면 나는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위해 나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달려갈 생각이다.
지난 10년 동안 동남아 인도차이나반도인 라오스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로 내려가 갖은 오해와 모함, 거짓들은 가십거리가 되어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40도 땡볕의 더위보다, 야구장비가 부족해 애태우는 마음보다, 경기력이 올라가지 않아 국제대회 성적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사람으로 인해 받게 되는 마음의 상처임을 이미 많이 경험했다. 하지만 동남아 야구 발전과 전파라는 큰 목표와 지금까지 해온 나의 길이 옳고 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신념을 갖고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동남아인 인도차이나반도로 내려가 야구가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또 이들 정부와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직접 나의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의 관심 속에서 사심을 바라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며,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동남아에서 야구가 발전하고 잘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오히려 감사하며 담담하게 받아드리기로 했다.
겪어보지 않고는 도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지만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다보면 120년전 대한민국에 야구가 보급되어 1000만명이 넘는 명실공히 한국프로야구처럼 아니 그보다는 좀 부족하다 할찌라도 120년후의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야구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야구선진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