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와 함께 행복하기 >

언어 선택

< 야구와 함께 행복하기 >

최고관리자 0 683 2024.12.31 13:20
< 야구와 함께 행복하기 >

2024년 한해를 되돌아 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이 나의 삶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삶이었던가 조용히 생각해 본다. 2014년 SK와이번스 팀에서 물러나 2024년까지 정말 쉼 없이 열심히 달려왔다. 지난 10년 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달려오다보니 결국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올 한해는 안식년을 갖기 위해 나름 노력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일들로 인해 몇번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연말을 맞아 아내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나의 건강을 위해 집에서 쉬면서 책도 보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우연히 오래전에 썼던 글을 읽게 되었다.

( 버려야 채워진다 )

“2021년 가을. 이사를 하기 위해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방 한 칸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야구 물품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눈에 들어왔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생활 동안 모아 둔 야구공, 글러브, 유니폼, 각종 상패와 상장, 기사 스크랩 등이 차고 넘쳤다. 선수 시절 은퇴 후에 ‘이만수 야구 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꾼 적이 있다. 혼자만의 이 계획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갈 때마저 야구용품을 일일이 다 챙겨 갔을 정도였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52년 동안 야구를 했다. 52년 동안 오로지 한길을 달려오면서 기념될 만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사를 할 때마다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물건들을 이번에 다 정리하게 되었다. 이사할 때마다 야구용품을 애지중지하며 혹시나 분실하거나 파손되지 않도록 이삿짐센터 직원분에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지탱해주고 내 전부라고 생각했던 이것들이 이제야 부질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왜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저장 강박’을 이제 스스로 치유할 용기가 생겼다. 아마도 수많은 야구용품은 내 젊은 시절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4분의 3 이상이 넘는 야구용품을 정리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 야구용품에 집착하고 아꼈는지를 알기에 깜짝 놀란다.

평생 모은 야구용품들은 내 분신과 같은 것들이다. 50년이 넘는 야구 인생에서 그라운드와 밖에서 남모르게 흘렸던 눈물, 좌절, 땀, 기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문득 과감하게 이것들을 정리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되면서 며칠 동안 고민을 했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사실 손이 떨릴 정도였다. 이것들을 버리고 과연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내적 갈등은 오래 지속되었다. 야구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내가 야구를 통해 얻었던 명성, 인기 등 화려했던 내 과거를 잊고 싶지 않은 내 욕심을 쉬이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야구용품을 버릴 때가 온 것이다. 끝까지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이 덧없음을 이제 알 나이가 된 것 같다. 비우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단순한 차원에서는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보다 비우고 나니 내 마음에 다른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덩그러니 비워진 방을 쳐다보며 문득 또다시 달려가서 버려진 것들을 주워 담아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걸 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참 미련스럽다.
                          --- 2021년 가을 이사를 앞두고----


라오스 야구와 함께 10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 라오스의 척박한 땅을 밟았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감히 인생 2막이라고 생각될 만큼 야구인으로서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었고, 삶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2014년 11월 12일에 처음 라오스에 들어갔을 때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과 너무나도 거리가 먼 라오스. 최빈국에 속하는 이 척박한 땅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누구나 말하듯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찼던 그 때.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선택했던 것은 고민, 생각보다는 실천, 행동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왔던. 인생 2막을 버티게 해준 “Never ever give up“.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버텨온 10년이었다.

지난 50년 야구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오로지 한길을 달려온 숨가쁜 내 야구 인생에 라오스는 크나큰 선물이었다.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선택한 낯선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한 10년의 시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야구를 통해 라오스의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삶 속에서 야구가 소중한 한 단어로 자리 잡게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이 모든 일들은 결코 혼자서 해낼 수 없었다.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고, 많은 기부자들의 아낌없는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라오스 야구의 처음을 함께 시작했던 헐크재단 스텝진들의 댓가 없는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라오스는 꿈에도 생각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이들의 사랑과 헌신, 열정이 한 국가에 야구를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라오스의 많은 세대들이 야구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젊은이들이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라와 헐크재단에서 라오스로 파견되었던 많은 지도자들도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후배들이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잘 견뎌주었던 후배들을 더 잘 지켜주고 다둑여 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도 크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50년 넘도록 평생 한길로 달려왔던 내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 새롭게 야구를 보급한다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없었다. 물론 낯선 나라에 들어가 야구를 보급할 때 또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는 유니폼을 입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삶에서 라오스는 새로운 이만수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야구불모지에 야구를 보급하고 개척해 나가는 길에 마주친 여러가지 난관들과 분에 넘치는 칭찬들이 처음 맨발의 라오스 아이들과 축구장을 빌려 야구를 시작했던 각오와 결심과는 점점 멀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야구장건설, 라오스에서 야구의 위상, 국제대회에서의 1승등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 과연 내가 낯선 땅에서 야구인으로 가야할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가?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그 곳에서 상주하지도 않고, 그 나라 언어에 능숙하지 못하면서 그 일을 해내기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가 너무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

10년이 넘는 인도차이나반도 야구에는 남모르게 흘렸던 눈물, 좌절, 땀, 기쁨이 담겨 있다. 어느 순간 문득 과감하게 이것들을 정리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되면서 며칠 동안 고민을 했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마지막 제 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한 인도차이나반도인 라오스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 야구를 정리한다면 과연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몇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2014년 SK와이번스 감독생활 끝으로 다시 시작한 라오스 야구는 다시 한번 나의 젊은 시절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은 아니었나 돌아본다. 이제 모든것들을 정리하고 비우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이제 다 내려놓고 비우고 나니 내 마음에 또다른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제3의 인생의 장이 열리는 기대와 함께 이전의 오류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있는 자 같이 인생을 마무리 하고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런 힘든 결정을 하기 까지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야구인이라는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고 지켜내야 하는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새로운 2025년이 시작이 된다. 새해에는 세상 것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이 좀더 의미있고, 유익하고, 보람될 수 있도록 이미 맡고 있는 발달장애인 야구와 사회로 부터 분리되고 소외되어진 이들과 함께 하는 리커버리야구단에 더욱 마음을 쏟고 그동안 동남아 야구 하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국내야구에 남은 힘을 쏟아야 겠다는 꿈을 꾸어본다.

라오스와 베트남에 야구전파를 하며 느끼는 야구와 예전에 내가 선수와 유명 팀들의 코치와 감독으로서 경험한 야구는 다르다. ‘야구’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남은 인생에서 내가 야구를 쫓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야구와 함께 행복해지기를 선택했다. 내 무모한 도전을 따라올 후배들을 위해 탄탄한 땅 위에 균형 잡힌 주춧돌을 꼭 놓아주고 싶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