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나에게 이야기 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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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나에게 이야기 할 때 >

최고관리자 0 635 2025.01.14 07:37
< 삶이 나에게 이야기 할 때 >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인생의 문이 닫힐 때 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마라. 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파커J. 파머 가 쓴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라는 책은 미국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0번 이상은 읽은 것 같다. 얼마나 많이 보았으면 책이 너덜너덜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 페이지 한장씩 넘길 때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눈물로 책을 읽었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나의 삶에서 야구 책은 평생 나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책이고 성경 책은 신앙생활하고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책이다. 그리고 '앤소니 드 멜로' 의 '깨어 나십시오' 파커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이 두 책은 선수생활과 미국에서의 지도자생활 때 가장 많이 읽었다.

요즈음 나는 다시 '파커J. 파머'가 쓴 '삶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책과 '앤소니 드 멜로'가 쓴 '깨어 나십시오' 책을 읽고 있다. 요즘 부쩍 '나는 누구인가?' 왜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기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힘들어 하는 나를 보며 넌지시 책 한권을 건네준다. 아내가 한번 읽어 보라며 건네주었던 책이 공지영 작가가 쓴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였다. 책 첫페이지에 뜻하지 않은 파커J. 파머 가 쓴 “내가 해야 할 일을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귀 기울여라. 인생의 문이 닫힐 때 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마라. 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글귀 를 다시 만나게 됐다. 

2025년 들어오고부터 부쩍 생각이 많아 졌다. 이전까지 정신 없이 동남아로 내려가 야구를 전파한답시고 동분서주하며 뛰어 다녔던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뛰어 다니며 동남아에 야구를 전파했는지? 나를 위함인지 아니면 좀더 좋은 세상을 위한 일인지? 그것도 아니면 야구를 통해 좀더 젊은이들에게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인지?

2024년은 지난 10년 동안 정신 없이 동남아 야구를 전파한답시고 뛰어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과부화가 생겨 몇번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늘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2024년은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을 갖고 작년 한해는 나의 건강과 쉼을 위해 편안한 시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이전에 없던 많은 일들로 인해 참 힘든 한해를 보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픔들로 인해 몇날 몇일을 집에 침거하며 힘들어 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어느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는 아내가 권해준 책이 앞에서 이야기 했던 3권의 책이다.

파커J. 파머 가 쓴 책 중에서
[열리지 않음에 대한 내 걱정, 그 걱정 때문에 나는 계속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걱정에 가려 숨겨진 비밀을 보지 못할 뻔했다. 나는 이미 내 새로운 인생의 땅을 딛고 서 있었고 내 여행의 다음 행보를 내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저 몸을 돌려 내 앞에 놓인 풍경을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반대의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한계와 능력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본성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야 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

삼성라이온즈 선수시절 말년에는 “깨어 나십시오”를 계속 읽었다.
[우리는 자기 것이든 남의 것'이든 딱지들에 반응하느라 우리의 삶을 너무 많이 허송합니다. 딱지들을 “나”와 동일시하는 겁니다. 딱지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와 관련된 의미에서 이 딱지들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나”는 우리가 집착하는 딱지들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딱지는 “내 것”에 속합니다. “내 것”은 항상 변하죠. “나”가 변한 적 있습니까? 관찰자가 변한 적 있습니까? 사실은 어떤 딱지들을 (아마 인간은 제외하고) 생각하든 그것들은 “내 것”에 적용되어야죠. “나”는 이런 것들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내 것”을 관찰할 때는 “내 것”과 동일화하지 않습니다. “내 것”에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나”를 “내 것”과 동일시할 때 고통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렵다거나 아쉽다거나 불안하다고들 합니다. 돈 . 이름 . 국적 . 인물 . 친구 등등과 동일화하지 않을 때 “나”는 결코 그럴 우려가 없습니다. 매우 활기 있어질 수는 있지만 위협당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이나 염려나 불안의 원인이 되었거나 되고 있는 것을 무엇이든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그러한 고통 저변의 갈망을 포착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는 여러분이 매우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갈망은 무엇일까요? 둘째, 그것은 단순한 갈망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동일시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여러분은 자신에게 “ '나'의 행복, 거의 '나'의 존립까지 이 갈망과 결합되어 있다 ”고 말해 온 셈입니다. 모든 고통은 무언가를, 그것이 내 안에 있든 내 밖에 있든, 나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야기됩니다. ]

가까이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지금까지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조금만 떨어져 바라보면 '나'라는 존재가 무엇이며 누구인지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몸부림 치며 열심히 달려왔다.

2025년도는 좀더 여유를 갖고 옆과 뒤도 돌아보며 나를 통해 세상이 좋아지고 작은 희망을 갖게 한다면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진리를 갖고 살아가려고 한다. 나만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이제 주위와 세상을 위해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야구를 보급하면서 좀더 세상이 밝아지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행복해 한다면 나의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길을 힘차게 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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