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손을 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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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손을 잡고 >

최고관리자 0 610 2025.01.28 05:46
< 엄마의 손을 잡고 >

곧 있으면 명절이 다가온다. 명절만 다가오면 어김 없이 엄마의 손을 잡고 재래시장 갔던 기억이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4남매 중에서도 차남이다. 명절날 어머님이 시장에 갈 때면 어린 나이에 꼭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시장에 갔던 기억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왜 다른 형제들보다 유난히 재래시장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시장을 따라 다녔는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면 어머님이 맛난 사탕이나 빵을 사 주어서 따라 갔는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머님의 따뜻한 품과 손을 유난히 그리워 했던 시절이라 엄마의 손을 잡고 시장을 자주 따라 갔던 모양이다.

어린시절부터 대구에서 자라서 그런지 '칠성시장'을 유난히 좋아했다. 옛날 어린시절에 살던 곳이 대구 시내 중심지(동문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에서 '칠성시장'까지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어린 나이에 30분은 생각처럼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유난히 '칠성시장'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곧바로 1982년 우리나라에도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창설이 되었다. 프로야구가 창설이 되자 나는 나의 고향인 대구 삼성라이온즈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해 입단하자마자 1982년 10월달에 결혼을 했다. 그때 나의 나이가 25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 같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였다.

결혼하고 아내와 가끔 재래시장 가면 어김없이 '칠성시장'에 장보러 아내와 같이 간다. 어린시절의 습관으로 인해 결혼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내와 같이 재래시장 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오랜 프로생활 하면서 슬럼프 올 때면 어김없이 가는 곳이 '칠성시장'이다. 지방에서 경기를 마치고 대구로 내려올 때면 이른 새벽 3 - 4시가 될 때가 많다.

경기가 잘 풀렸을 때는 곧바로 집으로 갈 때가 많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칠성시장'에 들러서 포장마차에서 파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혼자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졌던 기억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낙심이 되고 좌절이 올 때면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짐을 챙기고 나르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나이가 많이 되어 아내와 대구에 내려갈 때면 가끔 '칠성시장'에 들러 시장 안에서 파는 보리밥을 한그릇씩 먹곤한다. 재래시장은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도 엄마의 손을 잡고 갔던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결혼하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칠성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가족이랑 보리밥 한그릇씩 먹었던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장사하는 분들의 활기차고 힘이 넘치는 전통시장... 지금도 나이가 많이 되었지만 아내랑 함께 재래시장에 갈 때면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장을 본다. 구정을 앞두고 대목이라 재래시장에는 장을보러 온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천에는 자동차로 30분만 달려가면 인천에서도 제법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예전 엄마의 손을 잡고 재래시장의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거기다가 애들이 다 장성해 각자 부모의 품에서 떠나 보내다보니 요즈음 더욱 어린시절의 엄마 손이 그리워진다.

비록 나이가 많이 되었지만 옛날 어린시절의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재래시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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