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험은 용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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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6 07:02
< 모험은 용기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인생을 이야기 한다면 모험의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모험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앞서 모험을 하는 일이다. 남들이 간 길을 따라 가는 것은 그나마 두려움이 적을 수 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모험을 시작한 일은 14살 중학교 1학년 시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야구가 무엇이고 야구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야구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어린 14살이 어디서 강인한 용기를 가졌는지 무작정 야구를 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용기를 갖고 야구를 시작했지만 솔직히 그 길은 험난하고 다시는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힘든 과정들을 많이 보냈다.
두번째가 삼성라이온즈 팀에서 16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를 하다가 40살에 삼성라이온즈 팀으로부터 방출 당했다. 이때의 막막함은 나의 삶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미국으로 선진야구를 배우겠다며 홀로 갔을 때의 용기는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는지? 그때는 홀로 미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아내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내가 옆에서 간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장래를 위해 무조건 미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용기를 주었다.
나의 삶에서 이때가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이때 IMF 가 터지고 한달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거기다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홀로 미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왠만한 용기가 아니면 절대 갈 수 없었다. 이런 어려운 시절에 $7.000 들고 홀로 무작정 미국에 들어갔다.
지난 54년의 야구생활을 되돌아 볼 때 이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이때는 모험이라기 보다 솔직히 무모할 정도로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던것 같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 가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나고나서 알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삶에서 이때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과연 인도차이나반도인 라오스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로 내려가 야구를 보급할 수 있었을까? 나의 생각은 절대 인도차이나반도로 내려가 야구를 보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삶에서 어려움은 나를 낙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려움으로 인해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하고 강인하게 만들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나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힘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어려움이 오면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알기에 낙심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다. 정말 무모할 정도로 홀로 미국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나의 삶이 이렇게 전개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의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은 홀로 용기를 내어 미국에 들어간 일이다.
3번째 모험은 안락하고 편안한 미국 메이저리그 코치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2006년 시즌 끝으로 SK와이번스 팀으로 들어 올 때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한다면 절대 한국에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솔직히 이때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에서 구단이나 코칭스텝 그리고 선수들과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던 시절이다. 비록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시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때도 사랑하는 아내의 권유가 가장 컸다. 왜냐하면 미국에 들어갈 때 아픈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는데 무작정 홀로 미국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무조건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락함과 편안함을 다 뒤로 한채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때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원동력은 큰아들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나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번 결정한 일은 좀처럼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아내가 큰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멀리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아빠를 만나기 위해 6시간 넘는 길을 운전해서 늦은 밤에 집에 왔다.
“아빠~ 미국에는 아빠가 아니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코치할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빠가 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빠처럼 선진야구를 제대로 배운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아빠의 재능을 한국에 있는 수많은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전해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야구가 그만큼 더디게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아빠의 그 좋은 재능을 미국에서 썩혀 두느냐?는 것이다.“ “아빠가 선진야구를 10년 동안 익히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한국에 들어가 자라나는 후배들이나 야구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의 멋진 한마디에 닫혀 있던 마음이 열렸다.
이때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결정하면서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왜냐하면 평생 한국인으로 살아왔기에 한국판과 한국 야구가 어떻게 전개 되어 갈 것인지 뻔히 불보듯 훤하게 다 보였기 때문이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이때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성격이나 나의 야구 스타일은 미국스타일이다. 나의 스타일은 한국 야구 바닥에서 살아가기 참 힘든 스타일이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내의 간곡한 권유로 인해 미국생활을 모두 접고 다시 한번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4번째는 SK와이번스 팀에서 물러나 인도차이나반도로 내려가 야구를 보급하는 일이다. 솔직히 이때는 세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잠시 라오스로 내려갔다. 라오스에서 멋지게 재능기부 하고 다시 현장에 컴백하기 위해 내려갔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라오스 어린선수가 나를 팍 안더니 “아짱~ 저희들과 같이 야구해요“ 하는 한마디에 나의 욕심을 다 내려 놓고 나의 남은 삶을 이들과 같이 야구를 해야겠다며 결정을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험은 가장 먼저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없이 모험을 한다면 번번히 실패한다. 때론 견딜 수 없는 어려움과 모함으로 인해 모든 것들을 박차고 나오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을 감내하며 인도차이나반도에 야구를 보급하는 일만큼 보람되고 좋은 일은 없다.
연약하고 나약한 내가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숫한 어려움과 역경들을 만났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깊은 내면에 아무도 넘어 뜨릴 수 없는 강인한 면역성이 자리 잡혀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의 남은 삶 끝까지 용기를 갖고 모험의 길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