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스포츠 야구] 기록의 첫 장을 연 사나이, 헐크 이만수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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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2 16:45
[기록의 스포츠 야구] 기록의 첫 장을 연 사나이, 헐크 이만수 선수 시절
KBO 최초의 홈런, 안타, 타점의 주인공 ‘기록의 사나이’ 헐크 이만수.
야구사에 새겨진 최초의 이름을 기억하며, 삼성라이온즈 원년 팬으로서 올리는 작은 헌정의 글입니다.
숫자 1이 갖는 의미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 합니다.
홈런 하나, 삼진 하나, 도루 하나..
숫자로 남겨진 순간들이 선수의 인생을, 그리고 야구사의 한 줄을 새깁니다.
기록이 깨질 때마다 우리는 박수를 치고, 때로는 눈물겨운 세리머니로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모든 기록에는 언제나 ‘처음’이 있습니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그 길 위에, 묵묵히 첫 발을 내디딘 누군가가 있었죠.
오늘은 그 ‘처음’의 무게를 감당했던 한 사나이, ‘헐크’ 이만수(李萬洙)님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는 단지 홈런왕이기 전에, KBO 리그 1호 안타, 1호 홈런, 1호 타점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의 방망이가 휘둘릴 때마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는 쓰이기 시작했죠.
이름이 운명이 되다 – 李萬洙
李(이)는 오얏나무처럼 깊고 곧은 뿌리,
萬(만)은 셀 수 없이 많은 열정과 땀방울,
洙(수)는 강가처럼 유연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뜻합니다.
萬洙, 라는 그의 이름은 “넓고 풍요로운 강처럼 크고 깊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지요.
그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포수였고,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우승 코치,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와 감독, 그리고 지금은 헐크파운데이션의 이사장으로 야구의 불모지 라오스에서 희망을 던지고 계십니다.
기록은 잊혀질 수 있어도, 그의 사람을 향한 공(球)의 궤적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 속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
???? 1982년, 나의 봄 그리고 이만수
1982년, 저는 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운동장엔 흙먼지가 날렸고,
교실 창가엔 바람이 일었죠.
그 해 봄, 한국 프로야구도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권대회’ 이름부터 단정했던 그 시대의 스포츠.
그리고,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된 역사적인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맞대결이었습니다.
1회초, 삼성라이온즈 공격 첫 안타의 주인공이 될 뻔 했던 1번타자 천보성 선수는 플라이 아웃.
첫번째 주자인 함학수 선수는 상대선수의 실책으로 첫번째 주자에 만족 해야 했죠.
조용하던 경기장에 큰 함성이 터졌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4번타자 이만수. 2루타를 치면서 함학수 선수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KBO 역사상 1호 안타, 1호 타점, 그리고 이어진 5회초 유종겸투수 상대로 1호 홈런까지.
그는 단숨에 ‘기록의 사나이’가 되었죠.
홈런 뒤, 어린아이처럼 펄쩍 뛰며 두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던 그 세리머니 훗날까지도 이만수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장면이 되었습니다. (2루 베이스를 밟고나서 점프하는 모습은 에어조던 못지않은 에어만수 였죠????)
그날 경기는 MBC 이종도 선수의 끝내기로 삼성이 아쉽게 졌지만, 7살 꼬마였던 제 마음 속에는 승패보다도, 그 누구보다 반짝였던 한 이름 '이만수'가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야구, 그리고 기록에 대한 사랑은 그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기록으로 남고, 마음에 남은 사나이...
그는 198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후 은퇴할 때까지 16년 동안 한 팀만을 지킨 진정한 원클럽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수많은 '최초'를 새기며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몸으로 써 내려갔죠.
1984년, 타율 1위, 홈런 1위, 타점 1위 세 부문을 모두 석권한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
이 대기록은 무려 22년 뒤, 2006년 롯데 이대호가 같은 위업을 달성하기 전까지그 누구도 넘지 못한, 단 하나의 정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1986년 해태의 김봉연 선수와 나란히 경쟁하며 KBO 최초 100홈런 고지를 밟았고,그 뒤로 200홈런,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포수 최다 홈런 252개의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홈런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었습니다. 팀을 살리고, 팬을 울렸고, 무너지는 경기의 흐름을 바꿔 놓기도 했죠.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그는 늘 한 유니폼, 한 팀과 함께였습니다.
16시즌 동안 통산 기록 : 1449게임 5,034타석 타율 .296 : 타점 861, 홈런 252, OPS .907 : 홈런왕 3회, 타격왕 1회, : 포수 골든글러브 5회 : 등번호 22, 그 위에 올라선 유일한 이름...
포수는 화려하지 않은 자리입니다. 수비에 집중하며 체력을 소모하고, 공격에선 늘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하죠. 그럼에도 이만수 선수는 타자, 포수, 리더로서 모두 빛났습니다.
주전 자리를 내준 뒤에도, 대타로 등장할 때마다 팬들은 열광했고, 결과와 상관없이 그는 늘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응원은 단지 기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심장이자, 늘 먼저 웃고, 먼저 환호하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그의 이름 하나로 경기장 분위기가 바뀌던 그 시절 그 박수의 온도는 지금도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가 입었던 유니폼 등번호 22번. 지금도 삼성 라이온즈 구단 내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빛나는 숫자입니다.
다른 영구결번 번호들도 물론 위대합니다. 양준혁의 10번, 이승엽의 36번. 하지만 그 번호는 여러 선수가 거쳐간 끝에 ‘전설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반면 22번은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했고,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순결한 번호가 되었습니다.
그 번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자연스레 그의 웃음, 그 세리머니, 그리고 포수 마스크 너머의 땀방울을 떠올리게 되지요.
생각의 틈.
(기록은 잊혀져도, 박수의 온도는 마음에 남습니다.)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그는 또 다른 무대 위에서 야구를 하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인생의 후배들과 함께 말이죠.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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