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언어 선택

가지 않은 길...

최고관리자 0 1,639 2021.10.09 22:51
가지 않은 길
- 베트남 야구. 역사를 시작하다 -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에서 -
 
 펜데믹으로 온 세계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베트남은 사회적 봉쇄로 인해 모든 것이 고립된 시간을 보낸지가 거의 다섯 달이 흘렀다. 2021년 4월 베트남 야구연맹(VBSF)이 설립되었지만 베트남 야구는 아직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제 펜데믹의 악몽에서 벗어나 그 첫 발을 힘겹게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현대인들의 필수 여가활동으로 인식되면서 국민 모두가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되었다. 과거 엄격한 복장제한을 두고 값비싼 클럽들이 필요해서 귀족 스포츠로만 여겨져 보통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골프의 최근 행보가 참 다채롭다. 공중파 방송을 비롯해 많은 유투버들의 방송 소재로 등장하며 남녀노소 거부감 없이 우리네 일상에 녹아들었다. 환경 보호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골프장 건설은 아직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IT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듯 도심 속에서 사교의 장으로 스크린 골프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베트남 야구발전을 돕고 있는 내가 골프 찬양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멀게만 느꼈던 골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본래 골프가 가진 매력들을 우리 국민들이 느끼고 즐기게 된 과정을 베트남 야구와 다소 억지스럽지만 비교해 보고 자기위안을 삼고자 하는 뜻에서 언급해 보았다.

 서두가 길었다. 베트남에서 야구 발전을 위한 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가 이제 3년을 넘어가고 있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우리네 동네 야구 수준에서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야구시합을 하고 그들의 보여주는 야구에 대한 열정 또는 갈망과 비교해 턱없이 열악한 베트남의 야구 인프라에 대한 안타까움에 공감했다. 그것이 베트남 야구 발전을 위해 지금 내가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유일한 ‘희망’을 가지고 이 일을 돕게 된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다.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라고 시작했던 지금의 이 일들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17년 체육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우물 안 나에게 또 다른 엄청난 영역의 신세계였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저 베트남 야구 선수들과 시합을 하고 야구에 대한 주제로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10개의 프로팀,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많은 학생 선수들, 그리고 약 20,000개가 넘는 사회인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 스포츠 야구. 우리 일상이 되어버려 이제 특별한 존재로 생각되지도 않는 이 흔한 야구가 베트남에서는 아주 특별하고 이상한 존재로 존재하고 있다. 이상하게 생긴 방망이를 들고 던지는 공을 치고 달리는 요상한 스포츠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왜 방망이로 야구공을 치고 꼭 오른쪽으로만 뛰어야 하는 거니? 3루 베이스가 있는 왼쪽으로 뛰면 안 되는 거니?” 야구대회에 초청했던 친한 베트남 친구의 어처구니 없는 이 질문에 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고 그냥 웃어 넘겼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접하며 이미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단 1초도 의심을 하거나 궁금하지 않았던 나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질문은 꽤나 큰 흥미로움으로 다가왔다.

 “분명히 방망이로 공을 세 번 맞추지 못하면 아웃이 된다고 했는데 왜 지금 저 선수는 공을 맞추지 못했는데 아웃이 되지 않고 1루로 달리고 있는거니?” 야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아마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의 야구규칙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규칙을 정확하게 베트남 친구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머릿 속에 큰 결심이 생겼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나처럼 야구의 매력을 알지 못할까라는 푸념보다는 그들에게 야구가 어떤 스포츠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선수로서 삶을 살아보지 않은 비전문가인 내가 베트남어로 된 야구교본을 쓰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야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장애물들이 펼쳐졌지만 이제 곧 세상의 빛의 볼 날이 다가오고 있다. 졸작을 통해 얼마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규칙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사실 걱정이 많이 앞선다.

 나에게 야구는 단순히 투수가 공을 던지고 그 공을 호쾌한 장타로 홈런을 치고 공을 잡는 기술동작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단언한다. 하나하나의 동작에 의미가 더해져 예술이 되고, 선수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역사가 된다. 의미가 더해진 삶의 발자취이며 형이상학적인 선의 영역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철학으로 여겨진다. 그 선의 영역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야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람으로서 갖추어야될 인성을 키워주는 교육적 가치까지 더해진다.

 이억만리 떨어진 이 곳에서 야구가 하나의 역사가 되는 순간들을 꿈꾸며 나는 그들에게 야구를 알리기 위해 오늘도 야구 교본을 쓰고, 문화로서의 야구가 그들의 생활에 조금씩 다다르게 하기 위해 야구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이 될 베트남 최초의 꿈의 구장을 짓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있다.

(다음 편에는 10월 말 출판될 베트남어 야구교본의 제작과정에 대한 내용을 올릴 예정이다.)

베트남 야구협회 이장형 야구지원단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