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야구교본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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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0 16:55
( 베트남 야구교본 제작기 )
지금처럼 편안하게 공중파를 통해 야구 중계를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내 규칙적인 일과는 매일 가판대에서 스포츠 신문을 사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은 물론 타구단 유명 선수들의 전날 경기 성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내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늘어놓는 것이 남학생들이 즐비한 정글에서 꽤나 높은 지위에 머물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시절이었다.
최근 들어 프로야구에서 선수를 평가하는 자료가 많이 다양해졌다. 내가 야구전문가로 학교를 주름잡던 시절 타율, 방어율, 홈런, 도루, 타점, 다승 정도의 지식으로는 이제 명함을 내밀지도 못하는 정보의 시대가 되었다. WPA, WAR, wRC+, DSR, WHIP 등등. 야구전문가가 아니면 이해가 불가능한 각종 데이터를 활용하여 선수를 평가하는 세이버 메트릭스가 일반화되고 있다. 야구가 이처럼 세분화, 과학화되는 것은 그만큼 국민스포츠로서 대한민국 야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서두가 길어진다. 베트남어 야구교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에피소드들을 떠올려본다. 이만수 감독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야구자료들을 기초로 호기롭게 시작한 야구교본 집필은 이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야구가 생소한 ‘베트남’을 간과한 당연한 결과였다. 대부분 영어와 한자식 표기로 되어 있는 우리 야구 용어가 익숙했던 나에게 야구용어가 없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그것을 쉽게 설명해야 된다는 것이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전부 다 영어로 베트남 야구교본을 채우는 것에는 웬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야구를 평생 단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번역가와 베트남 야구연맹(VBSF) 위원이자 베트남 야구의 에이스인 찌엔(Chien)과 펜데믹 봉쇄 상황에서 몇 차례 만나서 용어를 정리하고 어려운 개념들을 어떻게 하면 쉽게 풀어서 기술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베트남어에 능숙하지 못한 나의 치명적인 결점이 원망스럽다. 오히려 한자와 영어가 혼용된 대한민국의 야구 용어만을 이해하고 있는 나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고 쓸데없는 토론이 종종 벌어졌다.
예를 들어 가장 간단한 야구 용어인 ‘안타(Hit, 安打)’를 베트남어로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할지 그냥 영어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심지어 출루와 진루, 송구 등 흔히 우리가 야구중계에서 한자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는 야구용어들에 대해 나 또한 뚜렷한 용어의 정의를 내리지 못해 헤매이고 있다. 처음이기에 어설프고 어색한 것이 용인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해보지만 야구를 처음 접하거나 야구를 실제로 하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내 욕심과의 괴리가 꽤 크게 나고 있다.
이 교본을 위해 축구장을 빌려 각종 사진촬영을 가진 지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베트남 야구 선수들 중에서 가장 출중한 실력을 겸비한 세 명의 내 소중한 친구들이 등장하는 ‘실전편’을 보면 그저 흐뭇하다. 베트남 야구교본에 그들이 반드시 등장시키고자 했던 내 의도를 그들이 너무나 잘 이해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쩐득판(Tran Duc Phan)회장에게 번역본을 설명하는 자리가 있어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다. 다행히 출판 전에 야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베트남 야구연맹(VBSF) 위원들과 함께 모여 회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무거운 책임감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어 정말 다행스럽다. 그리고 야구교본 제작을 지원해준 한국 문화원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뜻깊은 행사를 가지기로 했다.
내가 계획했던 베트남 야구 발전 방향 1단계에서 야구를 잘 아는 베트남 사람과 야구를 잘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 무모한 도전의 결과물이 소중하게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막바지 작업을 하면서 벌써 부족함에 부끄러움이 밀려와 2편 제작을 서두르고 싶은 헛된 욕심만 앞선다.
(다음 편에는 베트남 최초의 꿈의 구장을 짓기 위한 야구장 부지 찾기와 관련된 글을 준비하려고 한다.)
베트남 야구협회 이장형 야구지원단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