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 신이 야구 승패에 관여하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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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 신이 야구 승패에 관여하지 않나 봅니다.

최고관리자 0 1,667 2021.10.28 09:29
두번째

― 신이 야구 승패에 관여하지 않나 봅니다.
“아이고…. 그렇게 되면 점쟁이가 되는 거야. ” 2014년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만수는 야구 불모지였던 라오스와 인연을 맺었다. 현역 감독 시절, 사재(私財)를 털어 야구용품을 보낸 후, 마음에 항상 품고 지냈던 라오J브라더스 야구단을 찾아간 것이다.

“김 기자! 참으로 신기한 것은 사복 입었을 때보다 야구복 입을 때가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야구 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더니 이런 말도 보탰다. “2014년 11월 12일, 처음 라오스 들어갈 때만 해도 뜻을 이루고 한국으로 컴백한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어요. 재능기부 한다고 갔지만, 부끄러운 얘기로 한번 멋있게 보이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바이디’, 라오스 말로 인사말을 건네자 선수들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내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본 이만수 감독은 암담해졌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은 우리나라 중고생들보다도 덩치가 작았고,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은 마치 초등학생 같아 보였다고 한다.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다 미리 짜놓은 훈련 스케줄에 따라 캐치볼과 펑고를 시작했다. 그런데 선수들이 공을 너무 잘 잡아서 도리어 놀랐다. 체격이 왜소한 만큼 몸놀림이 빨랐던 것이다.

“선수를 선발했을 초창기엔 정말 아무런 야구 인프라가 없었고, 제가 보내준 유니폼, 글러브, 공, 그리고 방망이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야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뙤약볕을 피할 곳조차 없이 힘든 상황이다 보니 점점 선수들이 떠났죠.”

처음 선발했던 45명 중 13명이 남았고 그 후에 다시 15명 정도 더 선발해서 현재 라오J브라더스 선수들은 총 28명이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내일은 라오J브라더스의 해가 뜬다”는 믿음으로 달렸다고 한다.

“처음 만났던 선수들의 꿈은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이었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야구는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겠죠. 저는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 미래를 주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한국에 데려가겠다’고 하니 안 믿었어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도움으로 서울 잠실구장, 부산 사직구장, 인천 문학구장, 수원 KT위즈파크를 둘러보게 하고 인천서 홈스테이를 했어요. 라오스는 가난하니까 편부모 가정이 많고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도 많아요. 한국의 가족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돌아갈 때가 됐는데 안 가려는 겁니다. 제가 달랬어요. ‘너희가 돌아가야 다음에 또 올 수 있다’고. 그랬던 선수들이 한국에 3번이나 더 왔어요. 그리고 ‘밥 세끼’가 꿈이라던 생각도 달라졌죠.”

― 어떻게 달라졌나요.
“한 학생은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어요. 라오스는 군부가 장악한 나라입니다. 정치를 잘 해서 한국처럼 잘살고 싶다는 거예요. 다른 학생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곳 사람들은 병원이 없어 자연 치료밖에 못 받아요. 그냥 누워 있는 것이죠. 잘사는 사람만이 옆 나라 태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요. 기특하지요?

어떤 학생은 교사, 어떤 학생은 사업가… 가만히 듣다 보니 좀 괘씸해요. 야구 하고 싶다는 학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따져 물었죠. ‘야구 선수의 꿈은 없느냐’고. 다행히 2명이 손을 들더라고요. 한국 가서 야구 하고 싶다고 했어요. 하하하.”

베트남에 다시 희망을 심다 최근 SK텔레콤은 SSG 랜더스의 전신(前身)인 SK의 유니폼, 훈련 의류 등 약 3억원에 이르는 물품을 라오스 국가대표 야구팀에 후원했다. SK가 매각되면서 구단 전용 물품들을 후원하게 된 것이다.

또 대한체육회의 후원으로 민상기, 조민규 두 지도자를 각각 라오스 남녀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민 감독은 충암고, 야탑고, 설악고 등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조 감독은 자양중, 성남중, 중국 상하이 유소년 야구단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가만히 보니 라오스는 모계(母系)사회입니다. 남자보다 여자가 나아요. 여자팀부터 야구단을 만들었으면 더 빨리 성장했을 텐데….”
 
이만수 감독은 요즘 베트남에 야구를 보급하고 있다. “2019년 12월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처음 들어갔어요. 라오스와 베트남 간 국가대항전을 하자고 해서 간 겁니다. 사실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용사입니다.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는데 베트남 야구를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베트남에 야구협회, 대표팀조차 없어요. 고민, 고민하다가 ‘야구와 관련한 일체 경비는 베트남이 대라’고 했어요. 사실 라오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사재를 넣었거든요.”

라오스의 세계 GDP 순위는 118위 (204억4000만 달러), 베트남은 42위 (3548억6000만 달러) 수준이다(2021년 IMF 추정치). 베트남이 17배 가까이 경제 규모가 크다.

2020년 2월쯤 베트남에 들어가 야구협회도 만들고 대표팀도 뽑을 계획을 세웠지만 그만 코로나19가 터져 버렸다. 넋 놓고 무료하게 있지 않았다. “2019년 12월 30일부터 2021년 3월 말까지 베트남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무려 1400쪽이 넘는다”고 한다.

그 결과, 지난 4월 10일 베트남 야구협회가 꾸려지고 야구협회장이 선임됐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베트남 선수단장을 맡았던 체육계 고위 인사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라오스에서도 해낸걸요. 베트남은 자기네가 큰집이라 생각하고 인접 라오스를 작은집으로 여깁니다. 두 나라 사이에 유대가 깊은가 봐요. 라오스 야구를 보고 저를 부른 겁니다.” 현재 그는 베트남야구협회 고문으로 있다.

이만수의 20년 프로젝트
― 지금 실력으로 라오스와 베트남이 대결하면 누가 이깁니까.
“지금 라오스 대표팀은 한국의 중3, 고1 야구 수준까지 올라갔어요. 베트남이 좀 처져요. 다가올 2022년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 본선 진출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대구 팬들은 아직도 이만수 감독이 삼성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 현역 시절, 대구에서 살 때 아파트(수성구 범어동 경남타운)가 요즘 20억 한다더군요.
“(한숨을 쉰 뒤) 1997년 은퇴할 때 IMF가 터졌어요. 아파트 가격이 똥값이 되어 제대로 값을 못 받았어요. 당시 환율이 1달러에 2000원 할 때였어요. 집 팔고, 건물 두 채 팔아 미국에 갔죠. 미국에서 다시 야구 공부하는 데 다 썼어요. 후회는 안 해요. 야구 하면서 번 것으로 야구 할 수 있었다는 걸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 삼성 올드팬들은 다시 대구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어요.
“그런 희망이 잘 없어…. 국가대표 감독이나 삼성 감독 얘기를 들으면 옛날 같아선 마음이 흔들리고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확실히 편안합니다. 남들이 그래요. ‘환갑이 넘어도 편안해 보이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고.”

― 인생이 마음대로 되나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 전에 이야기했지만, 라오스와 베트남 야구 일을 대신 받아줄 이가 아직 없어요.” 그러더니 ‘20년 프로젝트’를 꺼냈다. “앞으로 20년간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에 야구를 전파하는 게 마지막 꿈입니다.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는 아직 시작조차 안 했죠. 라오스는 7년 동안 어느 정도 닦았지만, 베트남은 5~6년은 더 봐줘야 합니다. 다 이루지 못하는 것을 아니까, 하늘나라에 가면, 사람은 누구나 다 가야 하기에, 뒤에 따라오는 후배가 그 꿈을 반드시 이어주리라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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