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 ― 대구 팬이라면 포수 마스크를 벗어 들고 ‘삼성 파이팅’을 외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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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0 08:14
네번째
― 대구 팬이라면 포수 마스크를 벗어 들고 ‘삼성 파이팅’을 외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원래 목소리가 허스키하지 않았어요. 중학교에 들어와 야구를 시작할 때 소리 지르는 것부터 배웠어요. 벽 보고 종일 질렀어요. 소리를 많이 지르다 보니 목에서 피가 나더라고요. 국악 하는 사람들의 목에서 피를 몇 번 쏟아야 한다는 말이 새삼 이해가 되더라고요.
중2가 되니까 볼 줍는 걸 시켜. 그땐 공 3~4개로 연습하던 시절이었어요. 야외로 공이 날아가면 그 공을 찾아야 연습할 수 있었죠. 볼을 잃어버린다? 집에 못 가죠.”
삼성 원년 멤버들의 近況
― 프로 시절, 슬럼프를 겪었을 텐데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때로 잠을 못 자 괴로웠죠. 정신과를 찾아갔어요. 그 시절만 돼도 정신과라고 하면 쌍안경으로 보던 시절이잖아요. 요즘은 스포츠 선수의 멘탈 관리를 중시하지만 그 시절엔 그런 개념조차 없었어요.
MLB는 선수마다 멘탈 트레이너가 다 있어요. 그런데 비싸요, 비싸. 박찬호 선수도 현역 시절, 경기가 안 풀리면 멘탈 선생을 찾아가고 그랬잖아요.”
― 요즘 한국 구단은 어떤가요.
“구단마다 멘탈 트레이너가 다 있어요. 야구는 점과 점을 맞추는 멘탈 게임이니까. 경기 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그날은 무조건 경기를 망칩니다. 투수? 지는 날이야. 타자? 무안타야. 에러 하고…. 그만큼 예민한 스포츠입니다.”
― 야구팬들은 최동원·선동열 선수가 MLB 에서도 통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만수 선수는 어땠을까요.
“건방지다고 할지 몰라도, 솔직히 (MLB 가서도) 잘했을 것 같아요. 당시 뛰어난 투수는 많았지만 포수는 많지 않았어요. 요즘 시대라면 갔을 겁니다. 은퇴 후 미국에 가서 보니 더 그래요.” 현재 그는 삼성 은퇴 선수 모임인 삼성 OB회 회장이다.
― 삼성 원년 멤버들 근황이 궁금합니다.
“외야수 허규옥은 대구 경일대에서 야구 감독을 하다가 투수 권영호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고, 내야수 김한근은 삼성·OB 타격코치와 모교인 대구상고와 한양대에서 오래 지도자 생활을 했지요.
1루수 함학수는 프로(삼성·빙그레·태평양·현대·SK)와 고교(세광고·성남고·강릉고)에서 야구 감독으로 활약하다 최근 김포에서 실버야구단을 창단했고, 외야수 장태수는 삼성과 KIA의 1군 타격·수석코치, 2군 감독으로 오래 현장을 누볐어요.국가대표 2루수로 활약한 배대웅은 삼성·롯데·한화에서 1군 수석코치, 2군 감독을 하다 지금은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유격수 천보성은 삼성에서 은퇴한 후 LG트윈스 감독과 한양대 감독을, 서정환 역시 해태 감독과 삼성 감독을 역임했어요. 3루수와 유격수로 활약하던 오대석은 포철고와 대구상원고 감독으로 있다가 지금은 경상중 타격코치로 있고, 외야수 정구왕은 인천에서 정치 쪽 일을 했는데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어요. 외야수 박찬은 은퇴 후 미국 하와이 쪽에서 산다고 들었고, 역시 외야수 정현발은 태평양·해태·롯데의 타격코치로 있다가 인천 재능대 야구 감독으로 있었어요.
1970년대 ‘명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황규봉은 안타깝게 사망했고 이선희는 이틀 전에 전화통화를 했는데 건강이 조금 안 좋으세요.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의 추억
이선희 하면 ‘불운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1982년 3월 27일, 삼성과 MBC청룡 간의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을 잊을 수 없다. 삼성은 1회초에 한국 프로야구 통산 1호 안타와 1호 타점을 기록한 4번 타자 이만수가 5회초 역사적인 1호 홈런까지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승부는 6대2.
그러나 다 이긴 경기를 7회말 MBC 유승안이 3점 홈런을 때려 기어코 7대7이 되어버렸다. 경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이선희 투수가 등판했다. 그는 실업 야구에서 노히트노런을 두 번이나 기록한 국가대표 투수였다. 한국 야구가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19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에서 다승왕, 구원왕, 대회 MVP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선희는 8회와 9회를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10회말 이종도 선수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말았다. 연장 끝내기 만루홈런은 프로야구 40년사에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선희나 삼성 팬으로서는 떠올리기 싫지만. 이만수 감독의 말이다.
“이종도 선배의 만루홈런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활성화됐다고 봅니다. 누구도 삼성이 MBC에 진다곤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날 삼성이 이겼더라면 지금처럼 야구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 바람에 고교야구 인기가 고스란히 프로야구로 이어질 수 있었어요. 그 1등 공신이 이종도 선배고, 이선희 선배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때로 잠을 못 자 괴로웠죠. 정신과를 찾아갔어요. 그 시절만 돼도 정신과라고 하면 쌍안경으로 보던 시절이잖아요. 요즘은 스포츠 선수의 멘탈 관리를 중시하지만 그 시절엔 그런 개념조차 없었어요. MLB는 선수마다 멘탈 트레이너가 다 있어요.”
― 삼성 원년 멤버 중에 포수였던 박정환·손상대·손상득도 떠오르네요. 이만수에게 가려서….
“미안하지요. 박정환은 삼성 2군과 잔류군에서 배터리 코치로 있었고 포철공고 야구 감독도 했어요. 손상대는 삼성·한화·OB·롯데에서 배터리 코치와 2군 감독을 역임했고, 손상득 역시 삼성·한화·LG·SK에서 1군과 2군을 오가며 지도자 생활을 하다 신일고 야구 감독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다들 은퇴 후 재능 기부하고 있습니다.”
― 원년 감독이던 서영무 감독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손이 크셔서 귀때기(따귀)를 맞으면 나가떨어졌어. 하하하.”
― 프로선수를 왜 때립니까.
“옛날에는 많이 맞았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시절이었어요. 하루에 빳다(방망이) 5방씩 안 맞으면 불안해. 다음 날 얼마나 더 맞을까 하고. 매일매일 맞았어요.” 프로에서 맞았다는 말인지 학창 시절 맞았다는 말인지 헷갈렸지만 캐묻지 않았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절의 안타까운 회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