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다섯번째 , 故 장효조·최동원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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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08:56
마지막 다섯번째
故 장효조·최동원 10주기
지난 9월 14일은 이만수 감독의 친구인 롯데자이언츠 투수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었고, 9월 7일은 무척이나 가까웠던 ‘타격의 달인’ 삼성 장효조의 10주기였다. 공교롭게도 한국 프로야구를 빛냈던 두 전설은 일주일 간격으로 세상과 그라운드와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효조 선배는 대구중, 대구상고, 한양대, 삼성에서 함께 뛰면서 친형제처럼 지낸 사이였어요. 대부분 타자가 도끼 내려찍듯 다운스윙을 할 때 그분은 기술적인 레벨 스윙을 보여줬어요. 타구도 부채꼴처럼 자유롭게 좌우로 보낼 정도로 타격이 뛰어났죠.
친구 동원의 마구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어요.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제 통산 타율이 3할(통산 0.296)은 훨씬 넘었을 겁니다. 선수 말년에 삼성에서 호흡을 맞추던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그러니까 1988년 11월 23일 삼성은 투수 김시진과 전용권, 내야수 오대석, 외야수 허규옥과 롯데 투수 최동원과 오명록, 포수 김성현을 서로 주고받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러고 그해 12월 20일 또다시 삼성의 간판타자 장효조와 원년 톱타자 장태수를, 롯데의 강타자 김용철과 불펜투수 이문한과 맞트레이드시켰다.
팬들은 경악했고 최동원·장효조 역시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 역시 경기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1989년, 최동원은 단 1승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효조 역시 생애 처음으로 2할 타자로 주저앉았다.
― 삼성에서 최동원의 공을 받아보니 어떻든가요.
“그땐 이미 어깨가 다 나간 상태였어요. 볼다운 볼이 안 와. 삼성에서 잘할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최전성기는 고교와 대학, 프로 1~2년 차 때였어요. 이후 쭉 내리막길이었죠.”
― 장효조 선수와 추억이 많지요.
“제 롤모델이었어요. 중학교 때 새벽에 일어나 효조 선배의 집을 무작정 찾아가 야구 좀 가르쳐달라고 떼를 썼어요. 겉보기엔 강해 보이지만 마음은 아주 여리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았죠.”
문득 이 감독은 기자에게 “두 사람의 공통점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 ‘악바리’가 아닐까요.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너무 화려하게 살았는데 (말년에) 이게(야구가) 안 되니까…. 저도 (현역 때) 스트레스가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다 내려놨어요.” 한국 야구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지난 2020 도쿄올림픽 때 야구 국가대표팀은 노메달에 그쳤다. 야구 팬들은 물론이고 국민은 큰 실망에 빠졌다. 한국 야구의 침체기가 도래한 것일까. 왜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美 LA에인절스)처럼 160km/h를 던지는 투수는 없을까. 이만수·이승엽 같은 대형 타자는 왜 드물까.
“(지난 7년간) 라오스에만 머물렀던게 아니라 전국 일선 학교를 찾아가 재능 기부를 하며 느낀 점이 있어요. 이러다간 프로야구 발전이 더디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과도한 학부모의 기대, 성적 제일주의 지도자, 나무 배트 사용, 고교 지명타자 제도 등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무 배트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추어 야구를 살리려면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힘이 없는 학생들이 나무 배트로 스윙하니까, 투수 볼이 안 빨라도 되는 거야. 변화구만 던져도 되고. 그러니 강속구 투수가 안 나오는 겁니다.”
― 과거엔 고교야구도 알루미늄 배트를 썼어요.
“지금 일본이나 미국의 고교야구는 알루미늄 배트를 씁니다. 엘리트 학교는 다 알루미늄을 써요. 나무 배트는 주로 야구클럽에서 쓰는데, 클럽은 프로 진출을 위해 돈을 받고 레슨하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야구 국제대회도 알루미늄 배트를 쓰죠.”
― 지명타자 제도가 왜 야구 발전을 막습니까.
“지명타자 제도는 학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려 만든 제도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타석에 세워야 그 기록으로 진학할 수 있거든. 지명타자를 쓰니까 투수들이 투수 아니면 할 게 없는 거야.”
그는 “한국 야구가 다시 도약하려면 ‘이기기 위한 야구’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변화 없이 160km/h 이상을 던지는 투수도, 대형 타자도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이 빠른 투수는 제구가 아무래도 불안해요. 그래서 이기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제구 위주로 던지는 거야. 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힘 있게 치기보다 잘 맞추는 콘택트(contact) 위주로 칩니다. 그러니 배트에 힘을 싣지 못해 안타는 쳐도 홈런은 못 칩니다.
선수들에게 개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개성이 없다는 점도 야구 교육의 문제입니다. 한국 투수들은 폼이 다 똑같지만, 미국 투수들은 다릅니다. 특이한 폼이 많아요. 최동원 투수 공이 왜 남달랐을까? 꽈배기처럼 몸을 꼬아서 던졌거든. 아무도 못 쳤어요.
현역 시절 저는 순종파니까 감독이나 코치가 타격 수정을 지시하면 지시한 대로 따랐어요. 실험대상자야. 이렇게 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1년에 10번은 수정하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가면 내 방식대로 돌아가요. 사서 고생했죠….”
― 국제대회에서 우리 타자들은 특정 투수에게 모조리 맥을 못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투구 폼에만 익숙한 교육을 받았거든요. 국제대회에서 이상한 폼으로 던지는 투수가 나오면 1번부터 9번까지 죽을 쑵니다. 미국은 개성을 강조하니까 특정 투수에게 타자 한두 명은 못 쳐도 다른 타자는 그 투수를 극복할 수 있거든요.”
‘Never ever give up’
3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목이 조금 쉬었다. 2017년부터 이만수 포수상과 홈런상을 운영하고 있다. 사재를 털고, 협찬(엔젤 스포츠)을 받아 겨우 4차례 시상했을 뿐인데 최고 권위를 갖게 됐다. 명실공히 최고의 포수가 제정했기 때문이리라.
헤어질 무렵, 화이트삭스 시절의 사진에다 자필 사인을 해주었는데 짧은 영문장이 적혀 있었다.
‘Never ever give up’
국내 야구 현장을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절대 포기를 모르는 ‘전설’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