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K' 미란다가 소환한 '1984년 최동원' "그 추억 잊지 마세요."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두산 베어스 투수 아리엘 미란다, 시즌 255탈삼진으로 신기록 작성
-1984년 최동원 ‘223K’ 넘어선 미란다 “포크볼 활용 방향 변화로 눈 떴다.”
-37년 전 최동원의 추억 떠올린 이만수·이문한 “위대했던 투수, 잊을 수 없는 커브”
-2021년 미란다가 소환한 1984년 최동원 “잊지 말아야 할 추억이다.”
[엠스플뉴스]
10월 24일 잠실구장에선 37년 전 나온 위대한 한 기록이 또 다른 역사의 페이지로 넘어갔다. 시즌 223탈삼진. 이 믿기지 않은 기록을 37년 전 세운 투수는 고(故) 최동원이었다. 그리고 그 놀라운 기록을 넘어선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은 두산 베어스 투수 아리엘 미란다였다.
- 포크볼을 S존으로 넣자 ‘란다신’ 됐다 -
시즌 초반 퐁당퐁당 기복이 심했던 미란다는 6월부터 1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행진이라는 반전을 만들었다(사진=엠스플뉴스)
시즌 초반 퐁당퐁당 기복이 심했던 미란다는 6월부터 1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행진이라는 반전을 만들었다(사진=엠스플뉴스)
미란다는 10월 2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3회 초 1사 뒤 홍창기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 탈삼진으로 정확히 시즌 224탈삼진을 기록한 미란다는 대기록 달성에 나온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에 모자를 벗은 뒤 인사하며 화답했다. 이후 미란다는 탈삼진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시즌 225탈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2021시즌 미란다의 탈삼진 흐름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미란다가 2021시즌 기록한 9이닝당 평균 탈삼진 개수인 11.66개는 KBO리그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1996년 구대성(한화 이글스·11.85개), 1993년 선동열(해태 타이거즈·11.68개)만이 미란다 앞에 서 있다.
미란다는 시즌 초반만 해도 등판마다 기복이 심한 투구 내용으로 안정적인 평가를 못 받았다. 하지만, 6월 이후 각성한 미란다는 1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행진과 함께 무시무시한 탈삼진 페이스를 이어갔다. 37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최동원의 ‘223탈삼진’마저 넘어버린 미란다의 경이로운 투구에 모든 이의 감탄사가 쏟아졌다.
미란다가 탈삼진의 신이 된 비결은 바로 포크볼 활용법 변화에 있었다. 미란다는 위력적인 강속구와 함께 포크볼을 스트라이크 존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넣는 투구 패턴으로 KBO리그를 장악했다.
“미란다의 첫 번째 강점은 기본적인 속구 구위다. 평균 140km/h 중반대를 넘는 패스트볼이 끝에서 살짝 떠오르면서 더 위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또 포크볼을 스트라이크 존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존 안으로 넣으면서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미란다의 속구와 포크볼 릴리스 포인트는 거의 동일하다. 같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나오는 속구와 포크볼을 모두 대처하는 건 상대 타자들에게 매우 힘든 과제다. 거기에 세트 포지션에서 100% 구위가 나오는 점도 미란다에게 큰 강점이다.” 두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 37년 전 최동원의 추억 떠올린 이만수·이문한 “위대했던 투수, 잊을 수 없는 커브” -
미란다의 시즌 최다 탈삼진 신기록 ‘225K’로 소환한 1984년 최동원의 ‘223K’도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는 숫자다. 최동원은 1984년 당시 무려 51경기에 등판해 284.2이닝을 소화하면서 시즌 223탈삼진 기록을 달성했다.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든 최동원의 당시 경기 등판과 이닝 숫자는 이후 37년 가까이 깨지 못했던 탈삼진 기록을 탄생하게 했다.
미란다에게 포크볼이 있었다면 최동원에겐 커브가 있었다. 1984년 타격 3관왕에 올랐던 삼성 라이온즈 포수 이만수는 ‘친구’ 최동원의 믿기지 않았던 위력적인 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같은 나이의 친구였지만, (최)동원이의 공은 정말 대단했다. 개성이 강한 투구 자세에 피하지 않는 공격적인 정면 승부로 상대 타자들이 이미 기가 죽은 채 타석에 들어서야 했다. 속구 자체도 위력적이었는데 커브는 정말 치기 힘들었다. 살짝 옆으로 휘는 커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는 폭포수 커브였다. 당시 한국 야구 무대에선 볼 수 없었던 마구였다. 릴리스 포인트도 높았기에 속구라고 생각한 순간 커브가 들어오면 방망이로 커트하기도 쉽지 않았다. 탈삼진 기록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만수 전 감독의 회상이다.
1984년 당시 최동원과 함께 롯데에서 현역 생활을 했던 투수 출신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이문한 감독도 강렬했던 선배의 공을 다시 떠올렸다.
“솔직히 같이 뛸 때는 항상 옆에서 보니까 (최)동원이 형의 탈삼진 기록이 그렇게 대단한지 와 닿진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 돌아보니 ‘아 이 형이 정말 대단한 기록을 세웠구나’라는 걸 느꼈다. 동원이 형의 커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공이다. 당시 한 타자가 ‘손에서 공이 떨어지는 순간 속구인 줄 알았는데 몸쪽으로 낙차 큰 커브가 오더라.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더라.” 이문한 감독의 기억이다.
미란다의 시즌 탈삼진 신기록은 37년 전 최동원이 던진 공의 추억을 되살리게 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는 기록이 됐지만, 1984년 최동원의 위대함을 다시 떠오르게 한 의미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기록은 원래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다. 미란다도 외국인 투수로서 한국 무대에 와서 저런 대기록을 작성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미란다가 정말 대단한 투수라는 걸 느꼈고, 미란다의 신기록 달성으로 또 동원이 형의 이름이 나오게 된 것도 뜻깊었다. 37년 전 동원이 형의 탈삼진 기록을 새롭게 알게 된 야구팬들도 위대한 선수였단 걸 인정하실 거다. 또 37년 전 동원이 형의 공을 봤던 야구팬들은 그 기억을 다시 꺼내 보고 잊지 말아야 할 추억으로 남기지 않을까.” 이문한 감독의 말이다.
“항상 동원이를 보고 ‘너 때문에 내 타율 많이 깎아 먹었다’라고 농담을 자주 했다(웃음). 적으로 만나야 했지만,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는 투수였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고, 기록의 싸움이다. 새로운 기록이 나와 또 다른 좋은 투수가 주목받으면서 야구의 역사가 그렇게 나아가는 거다. 그래도 37년 전 내 친구 동원이의 투구는 다들 잊지 않았으면 하는 추억이다.” 이만수 전 감독의 말이다.
2021년 미란다는 1984년 최동원을 소환했다. 위대한 기록은 그 기록을 뛰어넘는 또 다른 기록으로 더 그 위대함을 인정받는다. 37년 전 최동원이 달성한 시즌 223탈삼진의 가치는 여전히 빛난다. 그렇다면 하늘 위에서 자신의 기록이 깨지는 걸 지켜본 최동원의 반응은 어땠을까. 환한 웃음과 함께 미란다를 향해 잘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지 않았을까. 야구를 정말 사랑한 최동원의 진심일 것이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