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야구, 투수 놀음 NO, 관중 놀이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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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야구, 투수 놀음 NO, 관중 놀이 YES!

최고관리자 0 2,984 2020.09.12 16:12
[문화칼럼] 야구, 투수 놀음 NO, 관중 놀이 YES!
 
이만수

2009. 9. 17. 1:14

지난해 9월 12일. 메이저리그를 당황케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길포드시 조그만 헛간에서 1755년 어느날 지인들과 베이스볼을 즐겼다는 변호사 윌리엄 브레이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1839년 뉴욕 쿠퍼스타운, 혹은 1791년 매사추세츠 피츠필드에서 야구의 기원을 찾았던 미국인들은 영국에 이미 베이스볼의 기원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야구 도시 부산. 사직야구장을 찾을 때마다 "대체 이 역동성의 정체가 무엇이며, 이 용솟음을 부산과 부산사람 삶속에 용해시킬 수 없을까"하는 발칙한 궁리를 했고, 이 글쓰기를 앞에 두곤 꽤나 사직을 들락거렸다. 세계최대의 노래방, 관중 600만 시대의 진원지 등 많은 수식어가 새롭게 등장 했는데 공통점이 있다. 구단이나 선수가 아닌 관중이 중심이다.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를 헤아리는 일은 20년 가까이 야구장을 찾는 하나의 화두였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줄기차게 격하거나 치열하지 않다. 투구나 타순이 쉴 때, 이닝을 바꿀 때, 구장 정리를 할 때 함께 쉬어 간다. 여기에 다양하고 복잡한 룰이 더해진다.

쉼과 여유는 폭발을 위한 기다림이다. 그래서 음악을 닮았다. 부산은 음악에 강하다. 부산에 있어 리듬의 지평은 광활하다. 개항 도시의 역사적 흔적으로 부산사람에게 깊이 밴 문화적 다양성은 일상적 풍경과 생태적 리듬의 포용성으로 복잡미묘한 야구의 품성을 품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직 응원은 치밀한 매뉴얼에 의해 움직인다. 네 박자는 모든 응원의 전형이다. 한데 부산은 이 네 박자 계열 안에서 다양하고 익숙하게 논다. 선수마다 다른 테마송을 우리 악기가 한 음속에서 농현하듯이 자유자재로 소화한다.

여기에 세 박자 계열 노래가 더해지고 이닝마다 바뀌는 치어리더 율동 등은 스스로도 모른 채 표출되는 다양성의 보고이다. 한 외국인 관객이 파울 볼을 잡아 두리번거리다 어린애를 향하자 "니 해라!" 평소 같으면 "아 주라"인데 참 부산사람 순발력 대단하다. 약자를 위한 따듯한 배려의 두 구호는 외국인과 가족 단위의 관중을 끌어 모았다. 여기에 "쌔리라"와 "마"에 이르면 사투리로 부산을 드러내는 언어적 문화다양성의 유니크함에 이른다.

부산의 가을야구가 불투명하다. 히딩크 리더십과 비교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로이스터의 역량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많은 것 같다. 실력과 팀웍 외에 계급장, 기득권 모두 떼어냈던 히딩크와 달리 로이스터는 스타위주의 이름값, 이른바 돈값 야구를 시즌 내내 포기하지 않고 있다. 히딩크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서 터득한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로이스터는 메이저리그식 스타 중심의 팀 운영을 각각의 동기 유발 요인으로 삼은 것 같다.

좀 더 신나게 부산 야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 야구에서 잔뼈가 굵어 메이저리그, 김성근 관리야구를 모두 경험하고 관중을 위한 쇼맨십까지 갖춘 SK 와이번즈 코치 이만수라면 부산 야구의 다양성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야구를 투수놀음이라 했던가. 사직야구장에 있어 야구는 관중 놀이다. 사직은 세계최대의 플래시 몹 콘서트장이다. 관중들은 테마춤, 키스타임, 프러포즈, 피켓 등 다양한 퍼포먼스에 의한 즉흥 콘서트를 스스로 연출하여 보여 준다. 스스로 생산하고 즐기는 이 깜찍한 프로슈머에게 관중은 웃고 감동하며 박수를 보낸다.

'사직 폐인' 점유지대 1루 쪽은 웬만한 체력으로 감당하기 힘들고, 중앙 지정석은 선수 야사까지 저장한 시민해설가들이 넘치며, 자유지대 3루 쪽은 관조적 철학성으로 편안하고, 외야는 삶적 게으름으로 조금 늦게 넘실거린다. 사직야구장. 부산 야구의 문화적인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 개항도시 부산에 남아 있는 다양성의 흔적을 고스란히 포용할 뿐 아니라, 또 다른 부산다움인 프로슈머의 광장. 사직야구장을 보면 문화다양성의 푯대가 서있다. 창조문화도시 부산. 사직에서 시작하라. 부산갈매기의 힘찬 가을 날개 짓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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