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플레이오프 이야기…왜 플레이오프를 도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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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플레이오프 이야기…왜 플레이오프를 도입했을까.

최고관리자 0 1,774 2022.10.23 08:26
최초 플레이오프 이야기…왜 플레이오프를 도입했을까.

“우리가 1985년도에 통합 우승을 하고 나서 아무래도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야구 흥행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해서 1986년도에 플레이오프를 도입하게 됐습니다.”

초창기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은 1986년 최초의 플레이오프를 경험한 산증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초의 플레이오프 게임에서 최초의 타점을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벌써 36년 전 이야기. 그도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며 웃으면서도 당시 플레이오프라는 새로운 가을잔치에 처음 참가했던 가슴 설레던 순간은 잊지 못하고 있다.

이만수의 말대로 1986년에 플레이오프를 도입한 것은 순전히 1985년의 삼성 때문이었다. KBO리그는 1982년 출범 첫해부터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치렀는데,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는 방식이었다.

1982년에는 전기리그 우승팀 OB 베어스와 후기리그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가 최초의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다. 1983년에는 전기리그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와 후기리그 우승팀 MBC 청룡이 두 번째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1984년에는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와 후기리그 우승팀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자웅을 겨뤘다.

그런데 1985년 삼성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하면서 통합우승을 차지해 버렸다. 다시 말해 한국시리즈가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시리즈는 프로야구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데, 한국시리즈 없이 한 시즌이 끝나 버리자 오히려 모두들 허탈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흥행 측면에서는 오히려 악재가 됐다.

양대리그로 운영되는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는 매년 월드시리즈와 재팬시리즈를 개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단일리그로 운영되기에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팀끼리만 격돌하는 방식을 고집한다면 추후에도 1985년처럼 한국시리즈가 무산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한국시리즈는 반드시 개최되도록 제도를 정비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고안해 낸 제도가 플레이오프다. 1986년 첫 시행을 앞두고 만들어진 플레이오프 진행방식을 보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2위 안에만 들어가면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부여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그리고는 ▲전·후기리그에 걸쳐 티켓 두 장(1위와 2위 상관없음)을 쥔 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나머지 두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거행하며 ▲티켓을 가진 팀이 모두 다를 때(4개 팀일 경우)는 전기 1위-후기 2위, 후기 1위-전기 2위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서 진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1986년 페넌트레이스를 진행한 결과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2위만 두 차례 차지한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얻었다. 대신 전기리그 1위인 삼성과 후기리그 1위인 OB가 역사적인 최초 플레이오프 진출 팀으로 결정됐다.

이 같은 방식의 모순은 1위와 2위의 구별이 없다는 사실. 2위만 확정하면 그 이후에는 굳이 1위를 위해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1위와 2위가 아무리 큰 게임차가 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1986년 첫해부터 전기리그 1위와 후기리그 1위가 한국시리즈가 아닌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 KS 상대팀에서 최초 PO 상대팀으로

삼성과 OB는 1982년 KBO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진출팀으로 맞붙은 바 있다. 그리고는 4년이 흘러 가을잔치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이번엔 사상 최초 플레이오프 상대팀이 되는 역사를 썼다.

두 팀은 KBO 출범 이후 서로 수많은 인연과 악연으로 얽힌 사이여서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앞서 설명한 대로 최초로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한 팀이라는 인연이 있다. 양 팀 사령탑들도 호사가들의 구미를 당기는 구도였다. 삼성 김영덕 감독과 OB 김성근 감독은 재일교포로 한때는 호형호제한 사이였다. 1982년엔 OB 감독과 투수코치로 우승을 함께 일구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기용 문제를 놓고 수시로 충돌하면서 서로 감정에 앙금이 생겼다.

삼성은 1984년 한국시리즈 파트너를 고르기 위해 롯데 자이언츠에 ‘져주기 게임’을 하면서 까다로운 OB를 떨어뜨린 악연이 있다. 이에 앞서 페넌트레이스에서는 ‘4차 대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양 팀 선수단은 만나기만 하면 벤치클리어링을 하며 으르렁거린 사이이기도 했다.

야구만 놓고 봐도 너무나도 양 팀의 색채는 뚜렷하게 대비됐다. OB는 맏형 윤동균을 비롯해 박종훈 김형석 신경식 김광림 등이 주축을 이루는 ‘좌타 군단’이었다. 반면 삼성은 김일융 권영호에다 15승 신인투수 성준까지 가세한 ‘좌투 군단’이었다.

OB는 평균자책점(2.61) 1위에 올랐고, 삼성은 팀타율(0.276) 1위를 차지했다. 삼성은 평균자책점(2.95)이 7개 구단 중 5위에 그쳤고, OB는 팀타율(0.248)이 5위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1차전> ‘헐크’ 이만수와 ‘황금박쥐’ 김일융…최초 PO 승리 합작

1986년 플레이오프는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에도 3주일이나 있다가 시작됐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개최한 서울아시안게임 일정 때문이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10월 11일 대구구장에서 5전 3선승제 플레이오프 1차전의 팡파르가 울렸다. 선발투수 대결부터 흥미로웠다. 삼성은 당초 예상대로 김일융이 선발로 나섰다. 반면 OB는 대졸 신인 최대어로 평가받고 입단한 루키 박노준이었다.

야간경기에 강해 ‘황금박쥐’, ‘밤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은 재일교포 좌완투수 김일융은 1986년 13승4패,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했다. 1985년 삼성이 전·후기리그 통합 우승을 할 때 25승을 거두며 팀동료 김시진과 공동 다승왕에 오른 인물. 1986년 시즌 도중에 탈수증으로 고생하면서 13승만 수확했지만 OB로서는 가장 껄끄러운 투수였다.

OB는 의외의 카드였다. 모두들 그해 19승4패(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한 에이스 최일언이 1차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허를 찔렀다. 당시엔 선발투수 예고제가 없던 시절이다.

박노준은 1986년 루키 좌완투수. 고교 시절부터 투·타에서 모두 재능을 보여 프로에 들어와서도 일정 부분 투·타를 병행했다. 김성근 감독은 입단 첫해 투수로 더 기대를 하면서 마운드에 자주 세웠다. 그러나 그해 성적은 투수로서 5승6패7세이브, 평균자책점 2.28, 타자로서 타율 0.173(52타수 9안타)에 그쳤다. 그렇지만 김성근 감독은 박노준이 9월 이후 3연승을 올리며 상승세를 탄 부분을 믿었다.

박노준은 단 6개의 안타만 허용한 채 4볼넷 3탈삼진 1실점 완투를 펼쳤다. 기대 이상의 호투였다. 그러나 승리할 수 없었다. 김일융이 더 잘 던졌기 때문이다. 9회까지 4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OB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삼성이 1회말 먼저 점수를 얻었다. 1사 후 2번 좌타자 허규옥이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를 날렸다. 3번타자 장효조가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4번타자 ‘헐크’ 이만수가 좌전 적시타를 터뜨려 삼성이 선취점을 뽑았다.

이 점수가 이날 경기의 결승점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만수는 1982년 원년 개막전에서 KBO리그 최초의 안타, 최초의 타점, 최초의 홈런을 기록한 주인공인데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초의 타점을 올리는 역사를 썼다.

8회까지 단 2개의 안타만 때린 OB는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1사 후 김광수와 김형석의 연속 안타로 1·2루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4번타자 신경식이 2루수 앞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결국 0-1로 패하고 말았다.

김일융은 완봉승으로 플레이오프 최초 승리투수의 월계관을 썼다. 박노준은 8이닝 완투패를 기록했다.

“김일융 투수는 완급조절을 정말 잘했어요. 그 시절에 우리나라 투수들은 완급조절이 없었습니다. 1983년 30승을 한 장명부도 마찬가지지만,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지 않아도 더 위력적인 투구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투수였습니다.”

그날 포수로 호흡을 맞춰 완봉승을 합작한 이만수는 김일융에 대해 먼저 이렇게 말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977년과 1978년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 1위, 1979년 탈삼진 1위에 오른 김일융은 걸음마 단계에 있던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에겐 딴 세상에서 온 투수였다.

김일융의 주무기는 커브였다. ‘그냥 커브’, ‘느린 커브’, ‘더 느린 커브’ 3종류를 던지며 커브 하나만 가지고도 완급조절을 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 시절 한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포크볼을 던졌다. 타자와 싸움에서 타이밍을 흐트러뜨려 우위에 서는 투수였다.

삼성 주전포수였던 이만수는 김일융이 처음 한국에 들어와 불펜피칭을 할 때 자신이 경험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그냥 몸풀기 차원인 줄 알고 미트만 끼고 공을 받으려고 하자 김일융이 “마스크를 쓰라”는 말부터 꺼냈다고 한다.

“김일융 투수가 처음 포크볼을 던지는데 전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김일융 투수가 ‘마스크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왜 마스크를 끼냐?’ 그랬더니, 자기가 포크볼 던지니까 잡으라는 거야. 그래서 (마스크를) 꼈습니다. 포크볼을 딱 던지는데 갑자기 이렇게(손으로 포크볼 궤적을 그리며) 오더라고. 공이 없어져 가지고 마스크에 그냥 맞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볼을 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체인지업이라는 것은 그때 우리 대한민국 투수들 중 던지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초등학생하고 경기하는 거랑 똑같은 그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깐 대선배지만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나….”

<2차전> OB 반격의 1승…대구에서 1승1패
2차전은 OB 우완 계형철. 삼성 좌완 권영호의 선발 맞대결로 시작됐다. 계형철은 그해 정규시즌 5승7패에 그쳤지만 경험이 많은 투수였다. 권영호는 그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7승7패에 19세이브를 올린 전천후 투수였다.

1차전에서 침묵했던 OB 타선은 1회초 시작하자마자 힘을 냈다. 2사 후 중심타선인 김형석~윤동균~신경식으로 이어진 좌타 트리오가 3연속 안타를 때리면서 선취점을 뽑았다.

삼성은 1회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1차전과 흡사했다. 1사 후 2번타자 허규옥이 이번엔 3루타로 찬스를 만들었다. 1차전처럼 장효조가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1차전 좌전 적시타를 때린 이만수가 이번엔 우전 적시타로 1-1 동점을 만들었다.

2차전마저 패하면 벼랑 끝에 몰리는 OB는 추가점을 먼저 냈다. 3회초 2사 1·2루에서 유지훤의 좌전 적시타로 2-1로 앞서나갔다.

5회초에는 선두타자 윤동균의 우익선상 2루타, 신경식의 희생번트 후 유지훤의 중월 2루타로 3-1로 달아났다. 계속된 1사 2루. 타석에 이종도가 들어섰다. 원년 개막전에서 MBC 청룡 유니폼을 입고 연장 10회말 삼성 이선희를 상대로 역사적인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린 주인공. 1984년 어우홍 감독 아래서 입지가 약화되자 1985년 현금 1800만 원에 OB로 트레이드됐다.

김성근 감독은 무슨 영감을 얻었는지 2차전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종도가 큰 몫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 김영덕 감독은 여기서 베테랑 선발 권영호를 내리고 그해 15승을 올린 좌완 신인투수 성준을 호출했다. 이종도는 여기서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2점홈런을 터뜨렸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5-1로 벌어졌다.

삼성은 5회말 2점을 뽑아 2점차로 추격했다. 9회말 2사까지 그 점수가 그대로 이어졌다. 여기서 허규옥의 안타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OB 김성근 감독은 3회말 2사 2·3루 위기에서 구원등판해 6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한 장호연을 내리고 마침내 아껴둔 에이스 최일언을 투입했다. 장효조의 안타로 2사 1·2루. 그러나 이만수가 3루수 앞 땅볼로 물러나면서 OB가 반격의 승리를 거두게 됐다.

<3차전> 최일언 완봉승…2승1패 OB, KS 눈앞
당초 3차전은 하루 휴식 후 잠실에서 10월 14일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을비가 쏟아지면서 하루의 휴식이 더 주어졌다.

15일 열린 3차전. OB는 최일언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최일언은 1984년 OB에 입단한 재일교포로 9승, 10승을 차례로 올린 뒤 1986년 19승을 거두며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2차전 구원등판으로 컨디션을 점검한 뒤 3차전에 처음 선발로 나서게 됐다.

삼성은 그해 16승을 거둔 김시진 카드를 뽑아 들었다. 김시진은 1983년 프로 입단 후 17승-19승-25승을 올린 뒤 1986년 가장 적은 승수를 기록했다. 남들은 16승이라면 부러워할 성적이지만, 김시진이었기에 16승이 적어 보였다. 어쨌든 전년도에 무리한 여파로 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에 시달린 결과였다.

최일언과 김시진은 9회까지 완투 대결을 펼쳤다. 결국 최일언이 9이닝 8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뒀고, 김시진은 8이닝 2실점으로 완투패를 당했다.

OB는 2회말 1사 만루 찬스에서 박종훈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7회말 이종도의 우월 2루타에 이어 김경문의 중전 적시타로 2-0으로 리드했다.

삼성으로선 9회초 무사 만루 찬스를 놓친 것이 뼈아팠다. 대타 이종두의 중전안타, 이해창의 1루수 앞 내야안타에 이어 허규옥의 투수 앞 번트가 절묘한 내야안타가 되면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여기에 다음 타자는 장효조. 그러나 장효조의 타구는 투수 정면으로 향했고, 투수~포수~1루수로 연결되는 병살타가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이만수도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로써 OB는 1패 후 2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1승만을 남겨두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4차전> 김일융 완투승…2승2패 원점

10월 16일 잠실 4차전. 삼성은 에이스 김일융을, OB는 박노준을 선발투수로 낙점했다. 1차전의 선발 매치업이 재현됐다.

1차전에서 김일융에게 완봉패를 당한 뒤 2연승을 거둔 OB는 사기가 올라 있었다. 4차전에서는 1회말 시작과 동시에 몰아붙였다. 반면 1패만 더하면 탈락하는 벼랑 끝에 몰린 삼성 선수들은 어딘가 모르게 위축돼 있었다.

1회말 선두타자 이승희의 우전안타 때 우익수 장효조가 실책을 범해 무사 2루. 계속된 2사 3루에서 4번타자 신경식의 땅볼을 2루수 김성래가 놓치는 실책으로 이승희가 홈을 밟았다. OB는 1-0으로 앞서 나가며 한국시리즈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성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곧바로 반격했다. 2회초 선두타자 김성래가 수비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좌월 2루타 날렸다. 이종두의 좌전안타로 무사 1·3루. 여기서 오대석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1 동점이 만들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박노준의 구위가 1차전만 못하다고 봤는지 곧바로 장호연을 투입했다. 이때부터 김일융과 장호연의 팽팽한 투수전이 지속됐다. 1-1 스코어는 8회말까지 이어졌다.

9회초 삼성 공격. 이만수가 포문을 열었다. 중전안타. 이때 장태수의 희생번트를 잡은 1루수 신경식이 과감하게 2루로 송구해 선행주자를 잡았다. 허탈해진 삼성은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음 타자 김성래가 우전안타를 때렸다. 1사 1·3루가 됐다.

여기서 대타로 나온 박승호가 중견수 쪽으로 큰 플라이 타구를 날렸다. 3루주자가 홈에 들어오기에 충분한 비거리. 삼성이 2-1로 리드하는 순간이었다.

OB는 9회말 선두타자 윤동균의 우월 2루타로 황금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다음타자 신경식의 번트가 투수 앞으로 가고 말았다. 김일융이 곧바로 3루를 선택해 윤동균을 잡아냈다. 이어 유지훤 삼진, 이종도 우익수 플라이. 경기는 그대로 1점차로 끝났다.

1차전 1-0 완봉승을 올린 김일융은 이날 9이닝 5안타 2볼넷 6탈삼진 1실점(비자책점)으로 2-1 완투승을 거뒀다. 삼성의 2승 모두 김일융의 어깨로 따낸 셈이었다.

<5차전> 1승→1승2패→3승2패…삼성 KS행

1980년대 삼성의 막강 화력을 이끈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가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플레이오프는 결국 최후의 5차전에 가서야 운명이 갈라지게 됐다. 4차전까지 2경기는 1점차 승부였고, 2경기는 2점차 승부였다.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10월 17일 잠실구장에서 5차전이 펼쳐졌다. 양 팀 모두 막다른 골목. 두 팀 다 신인 좌완투수를 선발 카드로 뽑아들었다. OB는 4차전 선발등판 후 1.1이닝만 소화한 박노준을 다시 선발로 내세웠고, 삼성은 2차전 4.2이닝 1실점 이후 충분한 휴식을 취한 성준을 투입했다.

삼성이 시작하자마자 펀치를 날렸다. 1회초 1사 후 허규옥의 볼넷과 투수 박노준의 와일드피치로 1사 2루 찬스를 잡았다. 김성래의 땅볼을 2루수 김광수가 놓치는 실책으로 1사 1·3루. 이만수가 박노준의 투구를 몸에 맞고 나가면서 1사 만루가 됐다. 여기서 이해창이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삼성이 1-0 리드를 잡았다.

OB는 2회말 2점을 뽑아내 곧바로 역전에 성공했다. 선두타자 윤동균의 볼넷과 신경식의 2루타로 무사 2·3루. 이때 유지훤이 2타점짜리 좌익선상 2루타를 날려 2-1로 전세를 뒤집었다.

삼성 벤치가 먼저 움직였다. 여기서 성준을 내리고 권영호를 투입해 일단 급한 불을 껐다. 그리고는 4회초 반격에 나섰다. 선두타자 이해창이 벼락같은 좌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2-2 동점. 삼성의 2점이 이해창의 방망이에서 터졌다.

OB 벤치도 움직였다. 박노준 대신 사이드암 김진욱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타석에 들어선 김용국이 곧바로 좌중간 2루타를 때리면서 삼성이 3-2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일진일퇴 공방이 계속 됐다. 삼성이 5회초 이만수의 적시타로 4-2로 달아나자 OB는 5회말 1사 1·3루에서 김광수의 3루수 땅볼로 다시 1점차로 따라붙었다.

숨 막히는 접전. 경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 팽팽한 고무줄을 끊은 것은 ‘타격의 달인’ 장효조였다. 7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OB 5번째 투수 최일언을 상대로 우중월 솔로홈런을 때렸다. 스코어는 5-3.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사 후 김성래의 2루타와 이만수의 적시타가 터졌다. 팀타율 1위팀답게 삼성 방망이가 매섭게 몰아쳤고, 순식간에 6-3으로 도망가면서 승기를 잡았다.

권영호에게 눌리던 OB는 8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대타 구천서의 중전안타와 1번타자 이승희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속타 불발로 무득점에 그치며 추격에 실패했다.

삼성은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선두타자 김용국 우전안타, 장효조 중전안타, 허규옥 좌전안타로 1점을 추가해 7-3으로 달아났다.

OB의 9회말 마지막 공격. 삼성 권영호는 대타 이복근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유지훤을 중견수플라이로 처리했다. 그리고는 이종도를 1루수 플라이로 잡고 마운드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혈전을 마무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하는 순간이었다.

2회말 무사 2위 위기에서 등판한 구원전문 투수 권영호는 8이닝 동안 101구를 던지는 역투를 펼쳤다. 3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OB는 6명의 투수를 줄줄이 투입하며 맞섰지만 재반격에 실패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

KBO 최초 PO부터 5차전 명승부
1986년 최초로 도입한 플레이오프는 양 팀의 명승부 속에 성공작으로 판명났다. 삼성은 1승2패로 뒤진 상태에서 4차전과 5차전을 잡는 역전 드라마를 펼쳐 구단 역사상 3번째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공교롭게도 짝수해(1982, 84, 86년)에는 모두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게 됐다.

반면 OB는 1패 후 2승을 따내며 유리한 고지를 밟았으나 4차전에서 흐름을 넘겨주고, 5차전마저 패하면서 원년 우승 이후 4년 만에 찾아온 한국시리즈행 찬스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1986년 도입된 플레이오프는 2021년까지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최초 플레이오프에 나섰던 두 팀은 플레이오프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두산(OB 포함)은 지금까지 무려 16차례나 플레이오프에 나서 최다 출전 팀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록 최초의 플레이오프에서는 2승3패로 물러났지만 총 69경기를 펼쳐 40승29패(승률 0.580)를 기록하면서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경기, 최다승, 최고승률을 달리고 있다.

삼성은 13차례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두산 뒤를 이어 최다 출전 2위다. 57경기를 치러 24승33패(승률 0.386)로 승률이 좋지는 않지만, 역시 최다 경기와 최다승 부문 2위에 올라 있다.

1986년 치열한 승부를 펼친 양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면 항상 명승부를 만들어왔다. 매경기 1점차 승부에 최종 5차전마저 연장 11회 혈전을 펼친 2010년 플레이오프는 역대 플레이오프 최고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두산과 삼성은 지금까지 총 5차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만났다.


역대 플레이오프 최고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2010년 삼성-두산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연장 11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박석민이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 출처=삼성 라이온즈>
■역대 플레이오프 승패(1986~2021년 기준)

두산 40승29패

삼성 24승33패

LG 18승25패

SSG 15승11패

롯데 15승13패

한화 13승11패

KIA 10승14패

키움 8승4패

NC 6승7패

kt 1승3패

현대 12승11패

쌍방울 2승3패

삼성은 1986년 최초 플레이오프에서 1승2패 후 2연승을 올리는 기세를 올렸지만 힘을 소진한 나머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1승4패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1985년 통합우승의 기세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약한 징크스를 만들고 말았다. 1982년, 1984년에 이어 3번째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고, 그해를 끝으로 김영덕 감독도 물러났다.

이만수는 1986년 최초 플레이오프 과정을 돌아보면서 동시에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패한 기억을 되짚었다. 20세기에는 한국시리즈만 되면 한없이 약해지는 삼성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감독들이 옷을 벗기도 했다.

“양대리그를 하게 되면 자연히 플레이오프가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양대리그가 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1986년에) 새로운 제도로 플레이오프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때 저희들이 좀 어렵게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습니다. 5차전까지 가서 코리안시리즈에 올라갔기 때문에 좀 많이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해태 타이거즈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힘을 못 써서 준우승을 하게 됐죠. (그 이후에도) 훌륭하신 많은 감독님들이 조기에 유니폼을 벗는 그런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KBO 최초 플레이오프에서 최초 타점과 최초 결승타를 기록한 이만수의 사인 (야구공 제공=ILB)
글. 이재국 야구전문기자(스포팅제국) | 이미지. KBO, 스포츠서울,스포팅제국,삼성 라이온즈 | 영상. KBO, KBS, 스포팅제국

필자 소개 | 이재국 기자

"야구가 밥 먹여주냐"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야구가 밥 먹여준다"는 걸 증명한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KBO 40주년을 맞아 40가지 전설 속으로 야구여행을 출발한다.

스포팅제국 대표 / 스포티비뉴스 전문위원 / KBS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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