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전 SK 감독 "최동원, 늘 날 2등으로 만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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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3 21:31
이만수 전 SK 감독 "최동원, 늘 날 2등으로 만든 친구"
입력 : 2014-11-12 10:01:20 수정 : 2014-11-13 10:43:05
"그 친구 때문에 난 늘 2등이었지요, 자존심은 또 얼마나 세던지…."
친구의 이름을 딴 '최동원상'의 첫 시상을 축하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이는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었다. SK 지휘봉을 내려놓고 라오스 출국을 앞두고 있던 그는 시상식 참석을 위해 출국 일정마저 뒤로 미룬 채 부산을 찾았다.
"중학생 시절 1973년 청주에서 벌어진 문교부장관기에서 처음 만났어요. 당시만 해도 동원이는 작은 체구였는데 공이 너무 빠른 거에요. 그날도 우리 팀이 졌죠. 고등학교를 올라가고, 대학교에 진학해도 결승전만 올라가면 버티고 있습디다. 심지어는 프로 와서도 우리 팀(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2등을 했어요. 아마 그 친구 없었으면 MVP도 한 번은 더했을 겁니다." 이 감독이 빙그레 웃으며 회고하는 최동원과의 첫 만남이다.
대구에서 줄곧 자란 이 감독과 부산 출신의 고인은 언뜻 접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 부산과 인천을 오가며 임종을 지킨 이가 바로 이 감독이다.
1988년 선수협 파동으로 최동원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사태가 발발하면서 한솥밥을 먹게 된 게 결정적이었다. 결국, 시대가 둘의 인연을 강하게 엮어준 셈이다. "다른 팀에 간다는 건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보던 시절이었어요. 트레이드 자체도 상상초월이었고. 당시만 해도 노조를 꾸리는 걸 다들 꺼리는 문화가 팽배했으니까. 실제로 삼성으로 와서 초기에 방황도 많이 했어요. 내가 포수니까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식사도 하고 하면서 정이 든거지요."
이 감독이 지금도 안타까운 건 여전히 남아 있는 최동원에 대한 숱한 오해들이다. 이른바 '파파보이' 논란에 대해서도 따끔한 한마디를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 말만 듣는 선수였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만큼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친구였어요. 입장을 바꿔서 운동선수 자녀를 둔 아버지 중에 그 정도로 자식에 관심 두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지방의원 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하고 연예계를 겉도는 등 방황 끝에 하던 '외도'로 인해 친구가 너무 큰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 역시 이 감독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분이다. "똑똑한 데다 남자인데도 말을 참 조리 있고 예쁘게 했어요. 하지만 선수의 외도를 인정하지 않던 게 당시 분위기입니다.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산에서 지도자 생활을 못 했다는 게 늘 마음이 아팠죠."
인터뷰 와중에도 몰려드는 사인 공세에 이 감독은 연신 사인펜을 놀려야 했다. '이거 봐요, 이 얼마나 야구하기 좋은 도시입니까?'라며 그는 먼저 떠난 친구를 부러워했다.
시상식을 마친 이 감독은 13일 곧장 라오스로 떠났다. 그는 라오스에서도 하나뿐인 야구단 '라오브라더스'의 구단주다. SK 감독을 그만둔 뒤 이제 척박한 땅 라오스에 야구의 싹을 심어주려 한다. "임종 직후 어머니가 '동원이 몫까지 야구를 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아직은 동네 야구 수준의 팀이지만 이 팀을 시작으로 그곳에 야구장을 세우는 게 내 꿈입니다. 하나의 재능기부이자 그라운드를 떠난 야구인의 소명이라 생각해요.
" 권상국 기자 k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