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대로 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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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은 대로 임하소서 >

최고관리자 0 1,102 2023.01.13 13:47
< 낮은 대로 임하소서 >

이만수(65), 프로야구 올드 팬이라면 모를 리 없는 추억의 이름이다. 1982년 3월27일, 한국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4번 타자. 한국 프로야구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을 터뜨린 ‘최초’ 그 자체다. 개인 통산 100홈런, 200홈런도 처음 쳤고 타격·타점·홈런 3관왕인 ‘트리플 크라운’도 최초로 해냈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홈런을 치고나서 펄쩍펄쩍 뛰며 그라운드를 도는 자칭 ‘오두방정’ 세리머니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의 이만수는 재능기부와 선행의 아이콘이다. 화려한 선수 시절을 거쳐 미국과 한국에서 코치와 감독을 지내고 2014년 프로야구 현장을 떠난 뒤 지금껏 국내외 야구 후학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건너가 야구를 보급하고 국가대표팀을 만들어 아시안게임에 출전시켰다. 국내에서도 한 해에 50곳씩 부지런히 학생·장애인 야구팀을 찾아다니며 야구를 가르치고 돕는다. 다시 2019년 12월 26일 베트남에 들어가 야구를 보급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자신의 별명을 딴 재단 ‘헐크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자선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53년간 야구를 하면서 받은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 불모지인 인도차이나반도 다섯 나라에 야구를 보급하는 일이다. 야구 선배로서 거기에 작은 주춧돌을 놓아주고 싶다. 근 10년이 걸려 라오스에 야구를 전했고 2021년부터는 베트남에서도 시작했다. 태국·캄보디아·미얀마가 더 있는데 내 평생 이루지 못하면 후배들이 꿈을 이어주기 바란다.”

영원한 22번. 지금도 달고 있는 포수 이만수의 상징 같은 등번호다. 배트를 내리찍는 도끼 타법이 아니라 호쾌하게 걷어올리는 어퍼스윙으로 홈런을 펑펑 날리는 것도 그의 전매특허다. 최우수선수, 홈런왕, 골든글러브, 올스타 등 선수 시절 그가 따낸 타이틀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타자, 포수가 아니라고 했다. 학창 시절 잠을 줄여가며 악착같이 훈련한 결과라고 했다. 16년 선수생활을 말년에 씁쓸히 마치고는 무작정 미국에 가서 메이저리그를 배워보겠다고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10년간 미국 야구를 경험하고 국내에 복귀해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감독을 지냈지만 팀 성적이 부진해 숱한 고초를 겪었다. 선수 전성기 때와 달리 곡절이 많았다. 그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더 큰 시련에도 버티고 이겨낼 힘을 얻었다고 했다.

“처음에 라오스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더니 하루 세 끼 밥 먹는 거라고 얘기해 깜짝 놀랐다. 이제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정치인, 의사, 선생님을 말한다. 야구라고 답한 아이도 2명이 나왔다. 야구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음을 느꼈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행복한 야구’를 꿈꾼다.”

‘헐크’ 이만수는 같이 아파하고 조금씩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가 오늘도 변함없이 따뜻한 일에 나서는 이유다.

( 경향신문 차준철 논설위원 과 인터뷰 중에서 )
( 사진은 경향신문에서 보내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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