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플로리다 한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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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08:24
Korea Weekly of Florida
현재시간: (EST) 2023년 3월 05일, 일 7:26 pm
[한인사회] 플로리다 한인소식
이만수 감독이 철망 밖에서 야구 연습장 지켜보는 이유
베로비치 스프링 캠프에서 만난 이만수 감독
(플로리다 베로비치) 김명곤 기자 = 고교와 대학 선수시절 만돌이, 만득이, 막내 등의 애칭과 한방에 판세를 결정하는 거포를 지칭하는 '헐크'로 불리우며 1970년대와 80년대 야구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이만수 감독이 지난해 11월에 이어 1월 15일 다시 플로리다 베로비치에 왔다.
선수 50명 스탭 20명의 SK 와이번스 대가족을 이끌고 베로비치 43번 애비뉴에 있는 스포츠 빌리지(전 다저 타운)에서 스프링 캠프를 치고 있는 이 감독을 지난 1일 만났다. 이 감독이 천정부지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마추어 시절이던 70년대 말과 80년대초 서울 운동장 야구장에서 열혈 팬으로 만난 이후 30여 년만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기막힌 세월"이 지났음에도 가까이서 본 이 감독은 나이(53)보다 4~5년은 더 젊어 보였다.
아침 7시 반부터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에 비해 이 감독은 골프 카트를 몰고 4곳의 연습장을 배회하며 연습을 지켜보는 것이 일과였다. 코치들이 실전연습 중인 선수 이름을 부르며 "그래 그래, 전보다 훨씬 낳아졌어, 그대로 해!" "자세를 조금만 낮추라고 했잖아! 아니, 좀더!" 등 일일이 지적하며 코치를 하고 있는 데 비해 이 감독은 한가하게 보였다.
‘한량한’ 감독?
3시간여 동안 각각 다른 구장에서 타격 연습, 번트 연습, 수비 연습, 투구 연습을 하는 장면을 기자가 지켜보는 동안 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뭔가를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고작 3~4 차례 였다. 그나마 연습장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 철망 밖에서였다.
그러나 이 감독이 '한량'하게 보인 것은 순전히 기자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감독이 몰고 있는 카트에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실려 있었다. 현장 인터뷰 도중에도 이 감독의 눈은 선수들과 코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인터뷰가 자주 끊기고 예상보다 길어진 것도 그때문이다.
시종 선그래스를 쓰고 있는 이유도 플로리다의 태양빛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얼굴 표정에 드러날 스트레스를 감추기 위한 것이고, 그 스트레스가 선수들에게 전해졌을 때 가져올 '여파'를 고려한 것으로도 비쳐졌다. 인터뷰 초두에 "선수시절만큼 좋은 시절은 없다. 정말 세상 편하고 신나는 시절"이라고 강조한 것만 보아도 감독으로서의 중압감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을 일일 이 간섭하지 않는 '자율야구'를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자신이 시카고 화이트 삭스 코치로 있으면서 익힌 '미국식 야구'라고 했다.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런식으로 닦여지는 야구는 '프로야구'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점심후 나른해질 시간에도 선수들은 식당 곁에 붙어있는 실내 트레이닝 룸에서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다섯 차례나 연이어 한국시리즈에 오른 정상의 SK와이번스의 감독을 우여곡절 끝에 맡은 후 일부 팬들과 '포털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며 호되게 시달렸다. SK 구단 본부가 스승인 김성근 감독을 밀어내고 이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않힌 이유가 '석연찮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화살이 이 감독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2군 감독이던 이 감독에게 일약 국내 최고 팀의 지휘봉이 맡겨진 과정을 두고 '사전 계획이 있었다'느니 '스승의 자리를 차고 앉은 배신 행위'라느니 하는 악플들이 인터넷 공간을 둥둥 떠 다녔고, '안티 만수' 그룹까지 만들어 졌던 터였다. 이 와중에 이 감독과 김 감독 간에 의도치 않은 '원격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고, 일부 언론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 감독은 이날 기자가 인터뷰 도중 슬며시 김 감독과의 관계를 묻자 잠시 숨을 고르더니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생긴다"면서 "아예 꺼내지도 쓰지도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기자는 당초 감독 오피스에서 하기로한 인터뷰 계획을 바꿔 이 감독의 '애마'에 동승하여 인터뷰를 가졌다.
- 한국의 유명 프로야구단들이 매년 오프 시즌에 플로리다에 캠프를 친 지가 오래 되었다. 기후와 음식 등 적응에 별 문제는 없나.
"기후가 정말 좋다. 선수들이 젊어서인지 시차적응도 문제 없고, 음식도 좋다. 저녁에만 한식을 먹는데 상당히 잘 나와 선수들도 만족해 하는 것 같다."
- 왜 이 먼곳까지 와서 전지훈련을 하나. 국내나 가까운 다른 지역으로도 갈 수 있지 않나.
"여기오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넓은가. 연습장(시설) 환경을 봐라. 이 넓은 세상에서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꿈과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선수들이 너무 좋아한다"
-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의 차이는?
"(웃으며) 세상에 제일 편한 것이 선수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감독을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전체 모두를 챙겨야 하지 않나.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이만수 야구 철학?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
- 골프 카트를 타고 연습장을 돌며 계속 지켜보기만 하는데, 선수들에게 왜 직접 지적하고 지시하지 않나.
"선수들과 코치들을 간섭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프로의 세계다. 선수들이 연습하며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 내 방식이다. 선수들을 지켜봐라. 오후 2~3시경 연습이 끝난 후에도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
- '이만수 야구 철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야구는 선수가 한다"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이곳에서 하는 '실전연습'의 목표는 뭔가.
"세가지다. 기본을 익히는 것, 집중하는 것, 팀플레이가 그것이다. 선수나 코치나 너무 우승에 집착하다보면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 있는데, 이 세가지를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우승'을 말하지 않는다."
- 현재 전력에서 채워야 할 부분은?
"선발 투수가 많지 않다. 21명의 투수 중에서 11명을 고르고, 다음에 5명을 최종 선발로 고르는 일이 쉽지는 않다. 내.외야 수비는 잘한다."
- 전임 김 김독과 구단 간의 관계가 좀 불편했던 것 같다. 구단 (행정본부)와의 관계는 어떤가.
"소통도 좋고, 현장과 프론트 간에 협력도 좋아 문제가 없다. 만족한다."
- 평생을 야구로 살아왔다. 야구 인생 중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중1때 친구따라 시작한 야구가 평생의 업이 됐다. 고2때 만난 정동진 감독님이다. 정 감독님으로부터 야구가 무엇인지 알게됐고 즐기게 되었다.”
- '이만수 선수'가 세운 신화적 기록들이 수두룩하다. 대략만 꼽아보아도 1983년부터 내리 3년간 최다 홈런, 최다 타점에 1984년 수위 타자, 1984, 1987년 장타율 1위, 5년 연속 골든 글로브 등 왠만한 기록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 일생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을 꼽으라면?
"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 등 '3관왕'을 기록한 것이다.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기분좋은 기록이다."
- 미국의 마이너와 메이저 리그 등에서 다년간 코치를 했고 2005년 시카가 화이트삭스불팬 코치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도 맛 보았는데, 한국 야구와 미국 야구의 차이점이라면?
"간단히 말하면, 한국 야구가 다소 주먹구구였던데에 비해 미국 야구는 '조직 야구'라는 것이다. 역사가 길어서인지 미국 야구는 모든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하나, 미국에서는 '자율'을 중시한다. 선수들이 알아서 하도록 관리하고 북돋우는 야구가 미국 야구다."
- 조금 껄끄러운 질문을 하겠다. 감독 취임하는 과정에서 말들이 많았다. 김성근 감독과 불화설도 돌았고, 심지어는 SK와이번스 팬들가운데는 '앤티 만수' 그룹도 있다고 들었다.
"(고개를 흔들며) 아, 제발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말고 쓰지도 말아 줬으면 한다. 무슨 얘기를 해도 오해가 생기고 곡해가 생긴다. 그 얘긴 더 이상 하기 싫다."
- 연습하는 선수들을 보면 지금도 뛰고 싶지 않나.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데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
"(웃으며) 선수를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못할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4시간 씩 자고 연습을 해 왔는데 지금도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운동을 한다."
30여 년 만에 가까이서 본 초로의 이 감독에게선 조금도 피곤하다거나 풀어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리도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외야를 향해 날카로운 금속성 목소리로 "야아! 가자~"라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눈빛도 얼굴 모습도 30여년 전의 '부지런한 만득이' 그대로 였다. '자율 야구'를 앞세우며 플로리다 태양 아래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SK와이번스의 올 한해가 기대된다.
올려짐: 2012년 2월 08일, 수 10:0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