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경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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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20:04
< 곤경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
안녕하세요, SSG 랜더스의 한유섬입니다.
지난 5월 15일에 올린 첫 칼럼에 이어 두 번째 글로 팬 여러분과 만나 뵙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지난 10일 퓨처스로 내려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겨우내 열심히 준비한 것도 있어 올 시즌에 대한 기대와 자신도 그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즌에 들어가니까 뜻대로 타격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에게 떳떳할 정도로 많이 노력한 게 있으니까, 곧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개막한 후로 2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어 많이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코칭스태프도 열성적인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도 좋았을 때의 영상도 찾아보면서 거듭 연습하는 등 오만가지 방법을 동원해 힘을 쏟았습니다. 첫 칼럼이 나가고 여러 사람이 연락이 와서 조언과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이만수 전 감독님께서는 제 글을 본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공유해 주셨고, 여러 조언과 함께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프로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만수 전 감독님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기에 그 말씀이 더더욱 큰 힘이 됐습니다.
여러 분이 신경을 써주신 만큼 제가 필드에서 성과를 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야구를 해오며 셀 수 없을 만큼 슬럼프를 경험했습니다. 흔히들 슬럼프에 빠졌을 때 빗맞은 안타 하나로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그 빗맞은 안타가 계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 다만 그 빗맞은 안타가 슬럼프 탈출의 계기로 작용할 때도, 그 배경에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준비를 통한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격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타이밍이 너무 왔다 갔다 하니까,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히팅포인트가 불안정해집니다. 그리고 소극적으로 됩니다. 평소라면 이 타이밍에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슬럼프 때는 ‘이 타이밍이 맞나’처럼 확신 없이 배트를 휘두르다 보니까 아무래도 주춤하는 요소가 있어 히팅포인트에 빠르거나 늦게 맞게 돼 상대 실투조차도 빠른 타구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참 야구가 어렵습니다. 야구는 평소에도 끝이 없다고 느끼지만, 슬럼프 때는 누구도 풀지 못하는 수학의 난제를 맞이한 수험생이라도 된 듯합니다.
올해 끝없는 부진 속에서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제 개인 성적이 좋지 못한 가운데 팀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힘을 보탰다면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텐데라는 마음의 짐도 무엇보다 무거웠습니다. 제가 부진하다고 해서 팀 분위기를 흐트러트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안 좋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표정이 일그러질 때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항상 팀 동료들이 더 편한 분위기 속에서 야구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열정적으로 성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때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프로에서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제 코가 석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연차가 쌓임에 따라 조금씩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것만 해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된 것이죠.
후배들에게 저만의 노하우뿐만이 아니라 프로 선수로 가져야 할 직업의식과 책임감 등을 강조하며 알려주곤 했습니다. 젊은 선수 중에는 퓨처스에서 KBO리그에 올라온 것에 만족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KBO리그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관리와 향상심은 필요불가결합니다. 그런 점을 항상 알려주고 노력했습니다.
또 선·후배 간의 유대감 강화와 코칭스태프와의 소통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게 팀에서 중견, 혹은 베테랑이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베테랑이 된 저 역시도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칭스태프 등의 조언은 물론이고, 행동에서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또 트레이닝 파트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체계적이며 헌신적인 몸과 멘탈 관리에 있어서는, 제가 다른 팀에 속한 적이 없지만, KBO리그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박창민 수석 컨디셔닝 코치님으로부터는 책도 한 권 선물을 받았습니다.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인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내용입니다. 현재 저에게 필요한 부분이라 그런지 앉은자리에서 술술 읽어나갔습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제가 한순간에 부진을 털어내고 연일 맹타를 휘두를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끝없는 부진에 집중력을 잃어가는 저에게 매사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과정보다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고, 매일 경기를 펼치는 프로야구 세계에서는 그날의 결과(그것이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를 잊고 다음 경기에 다시 집중하고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글머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퓨처스리그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실적과 주장으로 팀에 헌신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의 원활한 소통에 일조해 온 게 있어, 부진한 성적에도 감독님은 저를 쉽게 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주장의 역할을 잘 수행해 팀 케미스트리를 좋게 한 공로가 있다고 해도, 부진한 제 성적은 제 자신이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올해, 지난해보다 더 좋은 활약을 하기 위해 타격폼도 수정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과정을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프로의 세계는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퓨처스리그에서 잃어버린 제 감각을 되찾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 팀이 2년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KBO리그에서든 퓨처스리그에서든 제 배트를 내려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노력은 당장이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는 보답받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