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수들의 성장과 번영의 시대를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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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08:13
< 포수들의 성장과 번영의 시대를 꿈꾸며 >
야구인으로서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강연할 때 얼마나 즐겁고 보람이 되는지 모른다. 야구만 평생 해온 내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전해 줄 수 있는 강연자로 설 수 있다는 것 하나로만 해도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야구를 오래하고 한길로 달려오면서 거기에 얽힌 사연과 인생철학, 스토리는 몇날 몇일을 이야기 해도 끝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것을 하나로 잘 묶어서 강연 자료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많은 경험들이 결국 이제 나의 스토리가 되어 비록 전문 강사는 아니지만 해외로 국내로 다니면서 강연하고 있다.
특히 재능기부 다닐 때 지난 10년 동안 이틀째는 반드시 부모님들을 학교로 초청해 강연할 때가 많다. 어린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지 못하고 운동에만 전념한 아이가 혹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혹 내 아들이 야구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혹 내 아들이 야구하다가 도중에 포기하면 인생 낙오자가 되고 할일이 없어 나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부모이기 때문에 자기 자식에 대한 별의별 생각을 다 할 것이다.
그런 부모님 대상으로 나는 지난 50년 넘는 시간들을 자라나는 후배들과 부모님들을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야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관련한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포수 전문 아카데미'다.
지난 3월초에 경기상고에서 코치생활을 했던 엄종수 코치로부터 연락이 왔다. 엄종수 코치하면 지난 2022년 이만수 포수상을 받았던 엄형찬 포수의 아버지이고, 엄종수 선수는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 경험이 있다.
아들 엄형찬선수가 캔자스시티 로열스행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기상고에서 코치로 활약 중인 아버지 엄종수 코치 이력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엄종수 코치가 선수 시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포수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게 되었고 미국에서 두시즌 정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마무리했다.
아들과 아버지 둘다 미국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는 것 하나로만 해도 지금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엄형찬 선수는 아빠로부터 전문적으로 포수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엄형찬 선수는 어린시절부터 하나의 꿈을 품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당당하게 서서 최고의 선수들과 플레이하는 꿈을 가졌고, 그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엄종수 코치는 선수시절부터 늘 꿈꾸었던 '포수 전문 아카데미'를 이번에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UMVP' 이름으로 오픈했다. 우리나라는 투수와 내야수 그리고 외야수 아카데미는 많이 있어도 전문 포수 아카데미는 별로 없는 편이라 안타깝게 생각한 엄종수 코치가 자라나는 어린선수들을 위해 큰 결정을 하게되었다.
엄종수 코치가 '포수 전문 아카데미'는 내가 현장을 떠나 늘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였다. 나의 리스트에 들어있는 '포수 전문 아카데미'를 엄 코치가 발벗고 시작하게 되어 야구인 선배로서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엄 코치를 통해 젊고 훌륭한 젊은 포수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엄종수 코치는 1996년 2차 28번으로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에는 포수로 계약을 맺었다가 이후 투수로 전환했는데 그게 선수 생활을 단축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포수였지만 공이 빠르다는 게 알려지면서 코치들이 투수해보라고 권유했다. 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어깨 부상이 이어지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2년 만인 1998시즌 마치고 방출됐다.”
엄 코치는 한화에서 나온 후 아는 선배가 감독을 맡고 있는 신일중학교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만난 선수가 김현수, 나지완, 임훈 등이다. 그러다 우연히 신일중 전지훈련장을 방문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카우트 눈에 엄 코치가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매우 빠른 공을 던진 것이다.
중학교에서 코치로 3년을 보내고 4년째 접어들었을 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카우트 눈에 띄었다. 테스트를 해보고, 팀 관계자가 나와서 직접 확인 후엔 바로 계약하자고 하더라. 이번엔 포수였다. 당시 내 나이가 서른 살이었고, 아내가 큰 아들을 임신한 상태였다(엄형찬은 둘째). 아내가 적극 권유한 데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 애틀랜타와 계약을 맺고 혼자 미국으로 향했다. 그 전부터 미국 야구를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연수가 아닌 선수로 마이너리그 팀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당시 애틀랜타에는 신일고에서 온 봉중근이 있었다. 봉중근과 마이너리그에서 같이 선수 생활을 했고, 봉중근의 전담 포수로 활약하며 루키리그와 싱글A 경기를 소화했다.
신일중학교 코치와 신일고 출신의 투수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루키리그에서 서로의 꿈을 향해 발을 내딛었던 시간들이었다. 어린 나이의 봉중근한테 포수 엄종수는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포수보다 한국인 포수와 배터리를 이룰 수 있었고, 구단에서도 봉중근의 전담 포수로 엄종수 코치를 정해 놓은 터라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을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
“봉중근과 함께 생활했다는 내용은 처음 공개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이후 봉중근은 더블A, 트리플A로 계단을 밟아 올라갔고, 난 다시 방출 선수가 돼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 (펌)